‘다만악’ 촬영감독이 말하는 코로나 악재속 3주 연속 흥행 1위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4일 15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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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이하 다만악)는 홍경표 촬영감독(58)이 ‘기생충’ 촬영을 끝낸 직후 맡은 작품이었다. 잘 만들어진 세트장에서 촬영 구도를 완벽하게 컨트롤하며 작업했던 기생충과 달리 다만악은 ‘답안지’가 없었다. 일본 한국 홍콩 3개국 로케이션인 데다 정통 액션은 업력 22년차 홍 감독에게 첫 시도였다. 다양한 공간 속 캐릭터의 움직임을 담아야 했기에 베테랑인 그에게도 색다른 도전이었다.

5일 개봉한 다만악이 24일 현재 410만 관객을 모으며 올 흥행 1위 ‘남산의 부장들’(475만 명)의 뒤를 바짝 따라붙은 데는 홍 감독의 덕이 크다. 딸을 구하려는 청부살인업자 인남(황정민)의 절박함, 형을 살해한 인남을 쫓는 살인마 레이(이정재)의 살기(殺氣), 인남의 조력자이자 트랜스젠더 유이(박정민)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홍 감독은 그의 앵글 안에 고스란히 담았다. ‘태극기 휘날리며’ ‘마더’ ‘설국열차’ ‘곡성’ ‘버닝’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작품을 숱하게 촬영한 홍 감독에게 다만악 촬영 퍼즐의 4가지 핵심 조각을 들었다.

①공간의 분리=시나리오를 읽은 홍 감독은 ‘공간의 분리’를 촬영의 핵심으로 정했다. 촬영이 진행될 3개국의 공간별 특징을 살리고자 했다.

“영화가 시작되는 일본에서 인남은 피폐한 킬러로 모습을 드러낸다. 캐릭터 느낌에 맞게 일본에서는 해가 없고 구름이 많이 낀, 톤 다운된 느낌을 원했다. 그 느낌을 한국까지 연계해 해가 없는 날 촬영했다. 본격적인 추격과 액션이 벌어지는 방콕에서는 쨍한 태양으로 강렬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②빛과 어둠=다만악 흥행의 주된 요인은 살아 숨쉬는 캐릭터다. 주인공 인남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고독한 남성’이다. ‘아저씨’ ‘테이큰’ 등 기존 영화에서 클리세처럼 등장했던 캐릭터지만 홍 감독은 빛을 활용해 캐릭터의 기시감을 지우려 했다.

“인남은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강한 빛, 또는 어둠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카메라 앵글은 평범하지만 빛을 어둡게 하거나 밝게 해 관객이 인물에 스며들어갈 수 있게 했다. 인남의 첫 등장 신에서도 인남의 얼굴을 어둠 속에 두고 싶었다. 그 장면에서 빛이 밝았다 어두웠다를 반복하다가 서서히 어두워지는데 빛을 내가 직접 조사(照射)했다.”

③클로즈업과 로(low) 앵글=
인물의 감정을 담기 위해 클로즈업을 중점적으로 활용했다. 레이의 형 뒤에서 목을 조르며 “시즈카니(조용히 해)”를 읊조리는 인남, 주검이 된 형의 모습을 싸늘하게 내려다보는 레이, 방콕 클럽 무대 위 눈을 감은 채 립싱크를 하는 유이. 세 캐릭터의 강렬한 첫 등장 신 모두 클로즈업으로 촬영됐다.

“세 배우의 첫 등장을 모두 클로즈업으로 잡아 깊은 인상을 주려고 했다. 특히 레이가 살인을 벌이는 방콕 차고지 액션신은 클로즈업을 가장 신경 쓴 장면이다. 차고지 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살기어린 눈빛을 담고자 했다. 그 자체만으로 레이의 강렬함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레이는 클로즈업에 더해 극단적인 로 앵글도 많이 활용했다.”

④약간의 운=홍 감독은 다만악을 완성시킨 마지막 퍼즐이 다름 아닌 운이라고 전했다. 인남이 전 직장 선배 춘성(송영창)과 인천항의 식당에서 마주 앉았을 때 인남 뒤로 붉은 노을이 지는 장면은 고독한 인남의 심리와 어우러진 명장면으로 꼽힌다. 관객들은 ‘색 보정이 분명 들어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해가 지는 시간이 15분 정도로 짧아서 카메라 배치와 리허설을 끝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날씨가 흐렸다. ‘오늘 망했다. 다음에 찍어야 하나’ 했는데 갑자기 이상한 색감으로 황혼이 물들었다. ‘어? 이건 뭐지?’라며 서둘러 찍었다. 촬영 팀이 최선을 다해도 결국 약간의 운이 더해지는 게 아닐까.”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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