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러시아가 ‘몽골의 지배’로 얻은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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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차크 칸국/찰스 핼퍼린 지음·권용철 옮김/360쪽·2만 원·글항아리

칭기즈칸의 손자 바투(1207∼1256)는 유럽 원정군을 이끌고 동유럽을 휩쓴 뒤 1243년 흑해와 카스피해 일대의 초원에 킵차크 칸국(汗國·한국)을 세웠다. 이즈음부터 1480년까지, 몽골이 러시아 대부분을 지배한 시기를 러시아인은 ‘타타르의 멍에’라고 부른다. 타타르는 몽골과는 다른 유목민 부족으로 몽골 제국에 편입됐는데, 서방 세계에서는 몽골이 타타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멍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지배는 상당히 가혹했다. 정복 과정에서 약탈과 학살, 파괴가 자행됐고 이후에도 징세와 징병을 통한 착취가 벌어졌다.

그러나 지배와 피지배 관계는 일면적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킵차크 칸국을 연구한 미국 역사학자의 이 책은 ‘멍에’를 가리키는 사료 이면에 은폐된 교류와 몽골족이 러시아에 미친 복합적인 영향을 좇는다.

저자에 따르면 원나라 황실이 어느 정도 한족의 문화에 물들어 갔던 것과 달리 킵차크 칸국에서 몽골인은 생활 방식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 나라는 몽골족의 힘의 근원이 되는 초원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몽골 울루스(ulus·영토, 국가, 백성, 영지를 뜻하는 몽골어)에 포함되지 않는 여러 러시아 공국(公國)을 오랫동안 지배했다.

저자는 당시 러시아가 몽골인이 육성한 국제 상업의 혜택을 입었다고 봤다. 또 몽골의 보호 아래 러시아 정교회는 물질적 측면에서 거대하게 성장했다. 킵차크 칸국은 러시아를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같은 동유럽의 적으로부터 방어했다. 훗날 모스크바 공국이 몽골의 군사 재정 관료 모델을 활용하기도 했다.

킵차크 칸국의 멸망과 함께 여러 러시아 공국을 통합한 모스크바 공국의 ‘차르’는 기독교 제국의 황제이면서 ‘킵차크 칸의 정통 후계자’라는 지위를 가졌다. 그러나 동시대 사료에서 모스크바 공국이 킵차크 칸국을 계승했다는 개념은 잘 확인되지 않는다. 이는 러시아인이 몽골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최대한 기록에 남기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중세 기독교도와 무슬림 사이에 생겨난 우호적 사건들이 종교적인 이유에서 감춰졌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른바 ‘침묵의 이데올로기’다. 부제는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킵차크 칸국#찰스 핼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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