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쓰기, 60년 걸었는데 지름길은 없더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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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원고/존 맥피 지음·유나영 옮김/312쪽·1만7000원·글항아리
◇어느 노(老)언론인의 작문노트/다쓰노 가즈오 지음·윤은혜 옮김/280쪽·1만4500원·지식노마드

스마트폰의 시대에도 글쓰기에 대한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논픽션의 대가 존 맥피는 “한 글자도 못 썼을 때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연필과 종이를 가지고 누워서 머잖아 뭔가가 떠오를 때 엎드린 채로 휘갈겨 쓰라”고 조언
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스마트폰의 시대에도 글쓰기에 대한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논픽션의 대가 존 맥피는 “한 글자도 못 썼을 때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연필과 종이를 가지고 누워서 머잖아 뭔가가 떠오를 때 엎드린 채로 휘갈겨 쓰라”고 조언 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계획한 모든 인터뷰를 했다. 읽으려던 모든 책과 과학논문과 박사논문을 읽었다. 사일로 한 채를 거뜬히 채울 만한 자료를 모았는데 이제 이걸 가지고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미국 논픽션의 거장 존 맥피의 책 ‘네 번째 원고’에 나오는 저자의 하소연이다. 60년 넘게 잡지 ‘타임’과 ‘뉴요커’에 글을 써왔고, 지질학 동식물 인물 환경 역사 등을 주제로 30여 권 책을 써서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도 글을 쓸 때는 ‘타불라 라사(백지 상태)’가 된다. 89세가 된 올 1월 뉴요커에 쓴 기사 제목도 ‘타불라 라사’다.

뉴요커에 실린, 글쓰기 과정을 담은 에세이 8편을 모은 이 책은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이 같은 대가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위안을 건넨다. 그렇다고 “글쓰기의 지름길”을 알려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글감을 찾은 뒤 글의 구조를 짜고, 도입부에 머리를 싸매고, 결론을 써서 초고와 퇴고를 마치는 지난한 과정을 찬찬히 짚어준다.

글감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아이디어는 내가 찾는 그곳에 있다”고 격려한다. 글의 구조를 짤 때는 “구조에 글감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보면 독자들이 구조를 뻔히 눈치 채게 된다”고 힌트를 준다. 초고에 애먹는 친딸에게 “첫 번째 원고에는 뭐든 괜찮으니 그냥 내뱉고 토해내고 지껄이렴” 응원하지만 정작 자신은 도입부를 쓰지 못해 끙끙댄다.

디테일에 충실하면서도 정갈한 문장에 인정미와 유머를 가미한 그의 글은 모든 형태의 작가를 따뜻하게 감싼다. “… 내가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모조리 자신이 없고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 갇혔다는 느낌이 든다면 … 내 글이 실패작이 될 게 빤히 보이고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다면, 당신은 작가임에 틀림없다.”

제목 네 번째 원고는 저자 자신도 글을 완성시키는 데 적어도 4번은 쓰고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단 한 줄도 북북 그어서 지우지 않는 완벽한 작가의 눈부신 초상이란 환상의 나라에서 온 속달우편일 뿐이다.”

네 번째 원고가 글을 쓰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면 ‘어느 노언론인의 작문노트’는 문장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 아사히신문 1면 덴세이진고(天聲人語) 칼럼을 1975년부터 13년간 집필한 저자(2017년 작고)는 살아있다면 90세다.

저자는 좋은 문장에는 ‘이것만은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다’는 글쓴이의 마음이 담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글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는 일은 작가에게는 목숨을 걸고 서로 칼로 찌르는 일과 다름이 없다”(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혼신의 마음이다. 문장은 어깨에 힘을 빼고 쓰라고 권한다.

동시대를 살며 글을 써온 저자들이어서인지 두 책에는 호응하는 충고가 적지 않다.

“글쓰기는 선별(選別)”(…원고)이고 “‘빼다’는 동사와 함께하는 노동”(…작문노트)이다. “‘틀에 박힌 표현’과의 격투를 벌인다는 뜻”(…작문노트)은 “빌려온 생동감 위에는 절대 순조롭게 착륙할 수 없다”(…원고)는 것이다. 두 저자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가장 적절한 한 단어(le mot juste)’를 찾는 일이 글쓰기라고 ‘합의’한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네 번째 원고#존 맥피#어느 노언론인의 작문노트#다쓰노 가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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