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해 손녀 수지-스테파니 왕 “미국에 이승만, 유럽엔 서영해였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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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유일 駐佛대사 서영해 손녀 수지-스테파니 왕 씨

임시정부의 주프랑스대사 서영해의 손녀인 수지 왕 씨(왼쪽)와 스테파니 왕 씨.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임시정부의 주프랑스대사 서영해의 손녀인 수지 왕 씨(왼쪽)와 스테파니 왕 씨.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아버지는 평생 할아버지가 프랑스에서 활동한 한국인 기자이자 작가인 줄 아셨어요. 저 역시 그랬고요. 2012년 우연히 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알았죠.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우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찾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고, 외모에서도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두 자매의 입에선 ‘독립’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나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의 초청을 받아 한국을 방문한 수지 왕 씨(49)와 스테파니 왕 씨(38)를 8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들은 임정에서 유일한 주프랑스 대사를 지낸 서영해(1902∼?)의 손녀들이다.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임정 요인으로 활동한 서영해는 1920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이후 그는 1929년 언론사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고,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 등을 발표했다. 언론과 저술 활동뿐만 아니라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외교관으로서 역량을 펼쳐왔다. 당시 임정 외교가에선 “미국에는 이승만, 유럽에는 서영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스테파니 씨는 “건축가로 일한 아버지와 미술사를 전공한 언니, 그리고 생태학자인 나까지 학구적인 할아버지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광복을 맞이한 뒤인 1947년 서영해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연세대 등지에서 학생을 지도하고, 프랑스어 교과서를 펴냈다. 하지만 분단이 고착화하고, 국내 정치 활동에 한계를 느끼면서 다시 프랑스로 건너갈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1948년 상하이를 거쳐 가려다 국공내전으로 혼란스럽던 중국 상황으로 인해 억류되고야 만다. 중국 국민당 정부가 서영해를 공산주의자로 의심하면서 결국 여권을 빼앗기고, 이후 그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됐다.

수지 씨는 “할아버지의 저서를 번역해 유럽에 소개할 계획”이라며 “할아버지가 교편을 잡았던 연세대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등 앞으로 한국을 더 많이 찾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박물관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특별전 ‘서영해, 파리의 꼬레앙, 유럽을 깨우다’를 11일부터 6월 9일까지 선보인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임시정부 주프랑스대사#서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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