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칠맛의 절정…갈치나 고등어조림과는 다른 ‘생선찜’의 매력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7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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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이 왔나 싶다가도 코끝이 매큼한 바람에 몸이 시리다. 재채기를 하다가 매콤하고 따스한 음식과 술 한잔으로 저녁을 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옷깃을 여미고 생선찜 집을 찾는다. 생선찜을 주문하자 주인은 그때부터 분주하게 조리한다. 무를 자박자박하게 끓이고 감자는 포슬포슬 익히고, 칼칼하게 매콤한 양념인데 생선살은 말갛게 쪄낸다. 한 솥 가득히 자글자글 끓여지는 생선찜을 마주하니 삼한사온의 봄은 거뜬히 날 것 같다.

속초에서는 오래 전부터 생선찜을 해 먹는 풍습이 있었다. 동해에서 잡아 올린 계절 생선에 고춧가루 양념을 하고 갖은 야채와 콩나물을 얹어 둘러앉아 먹는 요리이다. 갈치조림이나 고등어 조림 등 흔히 알고 있는 생선조림과는 차별점이 있다. 속초식 생선찜은 양념이 조금 묽은 편이다. 매운탕과 조림의 중간 지점. 갖은 야채를 듬뿍 넣어 끓여낸 국물에 고춧가루와 마늘 등으로 양념을 하니 칼칼하고 개운하여 밥을 말아 먹어도 일품이다. 특히 신선한 생선살은 담백한 감칠맛이 양념에 묻히지 않는다. 식당에 따라 속초식 생선찜을 하더라도 손님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조림” 이라고 메뉴를 적은 곳도 있다.

속초에 자리한 생선찜 전문점 해리수는 가오리찜으로 유명한 곳이다. 14년째 한 곳에서 생선찜을 전문으로 하는 사장님은 얼굴의 미소만큼이나 손맛이 담백하다. 가오리찜이 유명한데 붉은 고춧가루로 맛을 내지만 기분 좋게 식욕을 돋울 뿐 입을 자극시키지 않는다. 쫀득하게 익은 가오리는 지느러미 뼈 사이로 순백의 보드라운 살점을 내어 준다. 뼈째 입안에 넣고 혀로 지느러미 사이사이를 헤엄치듯 발라먹으면 젤리 같은 껍질, 고소한 속살, 오돌토돌 씹히는 연골이 입을 가득 채운다. 살살 녹다가 쫀득하게 입에 붙다가 오도독 씹는 맛이 정신이 아찔할 정도이다. 푸짐하게 얹은 콩나물은 술과 함께 먹으면 바로 해장되는 마법을 부리니 다음날 숙취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주문할 때 사장님께 취향에 맞게 매운맛을 조절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도 감칠맛 나는 찜의 절정을 맛볼 수 있다. 가오리찜뿐만 아니라 장치찜도 유명하다. 가오리는 수입산이지만 장치는 속초 바다에서 잡힌다. 장어와 아구의 장점을 두루 갖춘 장치는 매끈하면서도 진한 영양이 있어 몸보신으로도 좋다.

한편, 모듬 생선찜은 다양한 생선을 한번에 맛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965년부터 생선요리를 해온 후포식당은 푸짐한 생선찜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주문하면 전골냄비에 내어주니 끓이면서 먹는 방식이다. 자작하게 졸여지는 국물은 양배추의 단맛이 스며들고 무가 시원하게 갈무리 한다. 칼칼하지만 텁텁하지 않고 매콤하지만 자극적이지 않는 양념 맛이 이곳의 비법이다. 생선은 계절에 따라 서너 종류가 들어가는데 도루묵, 가오리, 청어, 가자미, 운이 좋으면 장치가 들어가기도 한다. 모듬찜의 구성은 그 날 들어온 생선의 사정이나 사장님 마음에 달려있다. 당일 선도가 가장 좋은 생선을 골라 주기에 어느 하나를 맛보아도 탱글 탱글 조직감이 살아있다. 다른 곳에서 맛보기 힘든 도치 숙회도 이곳의 별미이다. 기본찬으로 나오는 간장게장과 가자미식혜는 곰삭은 깊은 맛을 보여준다.

속초항뱃머리는 속초 출신 사장님이 서울에 올라와 문을 연 곳이다. 매일 속초에서 공수한 생선으로 요리를 하기에 신선도가 좋다. 장치조림을 주문하면 가자미나 청어를 같이 넣어 주기도 한다. 대파와 무를 듬뿍 넣어 달근하고 기분 좋은 시원함이 압권이며 껍질이 쫄깃한 장치와 고소한 가자미의 살이 생선의 감칠맛을 가르쳐 준다. 겨울에 술 한잔 권하며 섭섭지 않게 보내고 봄을 맞이하기에 좋은 음식이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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