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숙 명예교수 “북한은 지금 경제 발전 갈림길… 김정은, 원로들에 지지받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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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숙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

서대숙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는 민족운동을 벌인 부친 서창희 목사 슬하로 중국 룽징(龍井)에서 태어났다. 서 교수는 25일 “어릴 적 독립운동가 규암 김약연 선생 댁 마루에서 놀던 기억이 뚜렷하다”면서 “내가 (1950년대부터) 외국에서 살아서 그런지 남북통일의 염원이 더욱 강하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서대숙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는 민족운동을 벌인 부친 서창희 목사 슬하로 중국 룽징(龍井)에서 태어났다. 서 교수는 25일 “어릴 적 독립운동가 규암 김약연 선생 댁 마루에서 놀던 기억이 뚜렷하다”면서 “내가 (1950년대부터) 외국에서 살아서 그런지 남북통일의 염원이 더욱 강하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김일성은 나라를 성공적인 전쟁국가로 만들려 했고, 김정일은 물려받은 재산(나라)을 지키려 군사독재국가를 만들었지요. 김정은 대에 와서, 이것(나라)을 받아서 뭘 해요? 개발을 시켜야지. 김정은이 ‘경제 발전하는 길은 미국과 손잡는 거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군인과 당 지도부를 설득한 게 북한 정치의 일반적인 흐름입니다.”

북한 공산주의운동 연구 1세대이자 김일성 연구의 대가인 서대숙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87)가 최근 평생 모은 독립운동·공산주의 사료 수천 점을 한신대와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그는 여러 차례 방북했고, 북한 고위층과도 친분이 있다.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 머무르고 있는 그를 25일 만났다.

서 교수는 “북한이 드디어 자기들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임했다. 굉장히 중요한 변천기”라며 “북한에 ‘빨리 변하면 변할수록 이익을 얻을 것’이라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 뒤에도 핵무기를 어떻게든 은닉해서 보유하려 할 것이라 본다. 하지만 서 교수는 “미국을 상대로 그런 정치(속임수)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할 거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오래전부터 북한의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했지만 정권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북한이 자본주의 국가와 경제 교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방은 독재에 위협이 되지 않을까. 김 위원장은 무슨 자신감으로 개방을 밀어붙이는 걸까. 서 교수는 “일가족이 나라를 쥐고 흔드는 독재체제이니, 한꺼번에 북한의 정세가 좋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망했다.

“최근 북한 내부 행사를 보면 김정은이 아버지나 할아버지 대 인사들을 보호해주고, 그들이 김정은을 지지하는 게 보여요. 김정일은 집권 뒤 처음에 숙청을 (대대적으로) 했어요. 하지만 김정은은 없애버린 사람이 장성택 말고는 별로 없어요.”

때문에 김정은 정권은 현재 상당히 안정적이란 분석이다. 서 교수는 “김정은은 건재한 원로들의 지지를 얻었기에 자기 파벌이 없고, 필요도 없다”며 “엘리트들을 ‘매니퓰레이트(manipulate·조종하다)’하는 게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류가 변화를 가져올 것만은 틀림없다. 서 교수는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미국에 북한 유학생을 지원하는 재단이 설립될 것이고, 엘리트들이 미국에서 공부해 북한에서 교수가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주체사상이고 뭐고…(흔들릴 것)”이라면서도 “믿을 수 없는 지도자를 믿고 오늘날까지 고생하면서 살아온 게 또 북한 인구의 대부분”이라고 했다.

서 교수가 이번에 기증한 자료는 책 ‘해방 후 10년 일지’(조선중앙통신사·1955년) 등을 비롯해 희귀한 것이 적지 않다. 그는 “공부할 때 모으고 버리지 않고 뒀다 뿐이지 돈을 많이 투자한 건 아니라서 다 기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그는 향후 남북이 다가서는 과정에서 여러 갈등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 교수는 “한국인들은 북한이 문을 열기만 하면 돈벌이를 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데, 녹록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 엘리트를 재교육하는 데도 막대한 노력이 든다. 전쟁과 대립의 역사 속에서 왜곡하거나 망각했던 기억들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내 원(願)이 한반도 통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거예요. 북한은 자기들만 옳다고 하지 말고, 남한도 북한을 배타적으로 대하지 말고…. 북한 사람도 같은 동포고, 슬기로운 백성입니다. 기회를 주면 꽃이 필 묘목들이에요.”

한편 서 교수의 자료를 기증받은 한신대는 “북한 사회와 문화, 생활사 연구에 필요한 자료들이 많아 통일 뒤 문화 통합 정책에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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