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반응이 ‘핫’하네? 방송계, 종영 콘텐츠 ‘유물 발굴’ 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5일 1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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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TV는 사랑을 싣고’ 방송화면.
KBS ‘TV는 사랑을 싣고’ 방송화면.
지난 19일 방송된 KBS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최불암 씨가 옛 친구를 찾아 나섰다. 고교시절 친구를 만나 오랜 오해를 풀게 되는 사연을 담은 이 프로그램은 9.1%의 시청률을 기록(닐슨코리아 기준)하며 당일 교양프로그램 1위를 기록했다.

지난달 첫 방송한 이 프로그램은 1990년대 40%대 시청률을 구가했던 예능프로그램을 ‘리부트’한 것이다. 익숙한 시그널 음악과 함께 사연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스튜디오 장면은 과감하게 들어내고, 주인공을 찾는 과정을 강조해 야외 촬영 비중을 높였다.

최근 오래 전에 종영한 TV프로그램이지만 꾸준히 생명력을 갖고 소비되는 ‘에버그린(evergreen) 콘텐츠’가 방송가에서 화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한 세대들이 ‘추억의 명작’을 찾아내 공유하고 퍼뜨리며 새롭게 조명 받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반응이 ‘핫’하자 업계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중·고등학생 친구들이 저를 알아보더라고요. ‘웬그막(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나오는 노홍렬 아저씨라고 하면서요!”

코미디언 이홍렬 씨(64)는 최근 들어 자신을 알아보는 10대 학생들이 많아져 신기하다고 했다. 2000~2년 SBS 시트콤 ‘웬만해선…’에서 이 씨를 봤다며 반가워했다는 것. 태어나기도 전이거나 직후에 방영했던 작품을 그들은 어떻게 접했을까. 바로 유튜브였다.

‘웬만해선…’은 처음엔 누리꾼들이 만든 ‘짤방’(간단한 사진이나 동영상) 형태도 SNS에서 소화되곤 했다. 인기가 점점 늘어나자 SBS는 8월부터 ‘레전드’로 꼽히는 에피소드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요즘 추세에 맞게, 20분 내외인 1편을 5분 분량으로 편집한 뒤 요즘 입맛에 맞는 ‘자막’을 달았다. ‘웬만해선…’은 물론 앞서 인기였던 ‘순풍산부인과’(1998~2000)도 만날 수 있다. MBC 역시 비슷한 시기 같은 형식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 등을 선보였다. KBS는 1983~1992년 방송했던 ‘유머 일번지’의 인기 코너를 자사 유튜브채널 ‘크큭티비’를 통해 내보냈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부터 SNS와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는 ‘유물 발굴’ 문화가 시발점이었다. 이전에도 옛 TV프로그램 ‘짤방’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누리꾼들이 지은 ‘유물 발굴’이란 이름이 퍼지며 더욱 확대됐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했고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추억으로 화제가 됐고, 젊은 세대에겐 SNS 환경에 어울리는 새로운 자막과 속도감 있는 편집으로 어필했다.

업계에선 최신 프로그램이 아니었기에 이런 SNS라는 무료 유통 구조의 확산에 한몫했다고 말한다. 최신 프로그램이라면 유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콘텐츠를 제공하기 때문에 자기 잠식의 우려가 있어 SNS로 소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옛날 작품’은 판매 대상이 아니라 부담이 없다. SBS 홍보팀의 SNS 담당 관계자는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 시리즈를 올리기 시작한 뒤 구독자 수가 매일 5000명꼴로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KBS 내부에서는 ‘체험! 삶의 현장’ 등 다양한 고전이 ‘리부트’ 후보 물망에 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TV는…’의 최형준 PD는 “(시청자들이) 어린 시절을 함께한 프로그램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라는 인류 공통의 감정이 맞물려 좋은 반응을 보내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레전드’ 대접받는 옛 프로그램은 그 자체의 완성도로 잠깐은 화제가 될 수 있지만, 변화 없이 복고풍 감성에만 매달려서는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고 조언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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