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짬뽕’ 아니라 ‘초마면’?… 우리말글의 이모저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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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말글/손진호 지음/320쪽·1만2000원·진선북스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올해 4월 열린 남북 예술단 평양공연에서 가수 강산에가 ‘라구요’를 부르자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라구요’는 남한에서 많은 이들이 즐겨 쓰지만, 실은 중부 사투리다. 표준어는 ‘라고요’다. 복수표준어를 폭넓게 허용하는 북한에서는 둘 다 표준어, 즉 문화어다. ‘까발기다’(표준어 까발리다), ‘또아리’(똬리), ‘수리개’(솔개), ‘아지’(가지)도 남한에서는 사투리지만 북한에서는 문화어다.

동아일보 어문연구팀 기자인 저자는 이처럼 우리말과 글의 이모저모를 세밀하게 짚어냈다. 이 책은 2014년 1월부터 3년 3개월간 본보에 연재했던 ‘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를 엮었다. 순서에 관계없이 손 가는 대로 펼쳐 읽다 보면 상식이 하나둘 쌓인다.

‘헤이즐넛’은 우리말로 개암이다. 그러니까 헤이즐넛 커피는 ‘개암 커피’다. 저자는 표준어를 강요하지 않는다. 말의 주인은 언중(言衆)이기에, 생명력을 유지하는 말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 최상급의 의미로 많이 쓰는 ‘역대급’에서 ‘역대’는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여러 대 또는 그동안’을 뜻하기에 ‘역대 최고급’이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이 말이 계속 사용된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단다.

‘자장면’ 뿐 아니라 ‘짜장면’도 표준어가 됐지만 ‘짬뽕’은 상황이 좀 다르다. ‘짬뽕’은 표준어이긴 하지만, 사전에서는 듣기에도 생소한 ‘초마면’으로 순화해 사용하라고 권한다. 중국 음식에서 유래돼 그렇다는데, 서로 다른 것을 뒤섞었다는 뜻으로도 사용하는 ‘짬뽕’이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새삼 의아하다.

말과 글의 뿌리를 파고들고, 새로 태어난 말을 찬찬히 살피며 더 좋은 표현을 고민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우리말의 묘미에 빠져든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지금 우리말글#손진호#짬뽕#초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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