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시인의 눈으로 확장한 한 글자 단어의 의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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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사전/김소연 지음/400쪽·1만4000원·마음산책

‘첫’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런 정의는 어떨까. ‘첫사랑은 두 번 다시 겪을 수 없다. 첫인상도 첫 만남도, 첫 삽도 첫 단추도 첫머리도 두 번은 없다. 하지만 첫눈은 무한히 반복된다. 해마다 기다리고 해마다 맞이한다.’ 그리고 ‘달’에 대한 이런 정의는 또 어떤지. ‘변해가는 모든 모습에서 ‘예쁘다’라는 말을 들어온 유일무이한 존재.’

김소연 시인의 ‘한 글자 사전’은 제목 그대로 한 글자 단어들의 정의를 정리한 책이다. 다만 그 정의는, 앞서 인용한 ‘첫’이나 ‘달’처럼 시인 자신의 정의다.

‘감’에서 ‘힝’까지 310개의 한 글자들에 대한 시적 정의가 실렸다. 어떤 정의는 뭉클하고 어떤 정의는 날카롭다. 어떤 정의는 코믹하다. ‘솜-법을 어긴 권력에 법이 휘두르는 방망이’라든가 ‘쇼-대부분의 정치인이 국민을 향해 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행동’ 같은 글에는 날선 비판이 깃들어 있고, ‘통-내 가족이 통이 큰 건 불안하지만 내 친구가 통이 큰 건 든든하다’ 같은 글은 웃음이 솟아나온다.

‘정’을 설명할 때는 ‘위로도 응원도 이모티콘으로 대신한다. 악수도 포옹도 이모티콘으로 대신한다.(…) 허구의 영역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정’이란 대목에선 세태 풍자를 엿볼 수 있다. ‘끝’을 정의할 때는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누군가는 청소를 해야만 하리’로 시작되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끝과 시작’을 옮겨 적는다. 한 글자만으로 된 단어들이지만, 하나하나에 사람과 인생과 사회가 담겨 있다. 시인이 만들어내는 ’시‘에 대한 저자의 정의는 이렇다. ‘이미 아름다웠던 것은 더 이상 아름다움이 될 수 없고, 아름다움이 될 수 없는 것이 기어이 아름다움이 되게 하는 일.’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한 글자 사전#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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