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방망이 맞을 각오로 귀 열어야 참된 리더십”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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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원로 정휴 스님

수(穗)바위 혹은 쌀바위를 등지고 있는 정휴 스님. 바위 한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흔들면 끼니마다 쌀 2인분이 나왔는데, 욕심 많은 객승이 마구 휘저어 피를 토한 뒤 쌀을 더 이상 토해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 사찰은 본래 화엄사(華嚴寺)였지만 1912년 설화에 따라 벼 화(禾), 바위 암(巖)자를 써 화암사로 공식 개칭했다. 고성=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수(穗)바위 혹은 쌀바위를 등지고 있는 정휴 스님. 바위 한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흔들면 끼니마다 쌀 2인분이 나왔는데, 욕심 많은 객승이 마구 휘저어 피를 토한 뒤 쌀을 더 이상 토해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 사찰은 본래 화엄사(華嚴寺)였지만 1912년 설화에 따라 벼 화(禾), 바위 암(巖)자를 써 화암사로 공식 개칭했다. 고성=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끽철봉(喫鐵棒)이라고, 쇠방망이 맞을 각오가 있어야 직언(直言)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때 진정한 리더십이 나온다.”

지난달 29일 강원 고성군 화암사(禾巖寺)에서 만난 정휴 스님(74)은 지도자의 리더십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일갈했다. 일간지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으로 등단한 스님은 2010년 입적한 법정 스님과 함께 불교계의 대표적 문사로 알려져 있다. 불교신문 사장과 조계종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 7선 의원을 지낸 뒤 8년 전 모든 소임을 내려놓고 사찰 내 영은암에 주석하고 있다.

정휴 스님은 “리더십의 핵심은 인간의 망가진 마음을 소생시키는 것”이라며 “정치 논리가 아니라 인간애가 담긴 리더십으로 정치해야 올림픽도 정치도 잘되는 것이다. 그래야 평양 올림픽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안 나온다”고 했다. 멀리서 왔으니 점심 공양 뒤 차나 한잔 마실 요량이었다는 스님과의 인터뷰는 2시간가량 진행됐다.

―법정 스님처럼 살아 보겠다고 했다는데….

“난 그런 말 한 적 없다. 법정 스님의 명상의 깊이에 내가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그 어느 스님보다도 많은 독서를 했더라. 스님은 내면세계를 닦아 경지에 이르렀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도전했다. 송광사 불일암에서 강원도 오두막으로 가는 길이 그렇다.”

―특히 어떤 기억이 있나.

“내 소소한 인연보다는 법정 스님과 가까웠던 청학 스님이 마지막 면회 뒤 전한 말을 잊을 수 없다. 법정 스님이 말을 못하는데, 하얀 종이에 ‘나고 죽음은 하나다’라고 썼다고.”

―지난해 수행 체험을 담아 ‘백담사 무문관 일기’라는 책을 냈다.

“무문관 수행을 통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부처를 과연 드러낼 수 있을까 궁금했다. 이런 고민도 있었다. 왜 우리는 중국 선사들이 이뤄 놓은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지금은 어떤가.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한다. 이게 논리적으로는 맞는데 마음이잖아. 마음이 어렵다. 마음은 빛보다 빠를 수 있다. 단, 분노 애욕 탐심에 가려 그 마음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있는 거다. 먹물 옷을 입은 칠십 중반의 나도 그런 경험은 몇 번 되지 않으니….”

―요즘 글쓰기는 어떤가.


“건강이 허락한다면 죽어가는 이들이 열반하는 모습을 주제로 책을 쓰고 싶다. 나도 죽을 준비 10분의 1은 했다. 2년 전 비에 글도 써 넣고 죽을 날짜만 빈칸으로 만들어 놨다. ‘비를 세울 필요가 뭐 있느냐. 지나가는 행인의 입이 비석이지’ 하면서도 죽음 앞에서 게을러지고 싶지 않은 노력일 게다.”

―요즘 화두는 무엇인가.

“출가자 대부분 성불(成佛), 깨닫겠다고, 부처를 이루겠다고 화두를 참구한다. 하지만 인간이 부처님처럼 완전한 깨달음을 이룰 수 있을까? 그게 내 화두라면 화두다. 물건이라면 완제품이 가능하지만 정신은 그렇게 완성되지 않는다.”

―좀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깨달음이 인격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처의 깨달음은 그 하나는 지혜요, 다른 하나는 자비다. 큰 스님들 만나 봤지만 지혜는 번득이는데 인간의 ‘자비 체온’이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산골 마을에서 군불 지펴 이불 속에 손을 넣으면 따뜻하다. 그런 인간적인 체온의 자비다.”

―조계종 총무원이 신년에 대탕평과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했다.

“용서를 하려면 이쁜 놈, 미운 놈 가리지 말고 해야 한다. 그게 대탕평이다.”

―최근 평창 겨울올림픽과 관련해 평양 올림픽이냐는 논란도 있었다.

“국가 운영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하나로 묶는 능력이 아쉽다. 선거 때는 통합의 리더십을 입이 마르도록 얘기하더니 집권 뒤에는 진영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설사 참모들은 그런 생각을 해도 지도자는 오로지 통합 정신을 가져야 한다. 저기 설악산에 눈보라 칼바람 쳐도 머지않아 봄이 온다. 리더십의 핵심은 인간의 망가진 마음을 소생시키는 것이다. 정치 논리가 아니라 인간애가 담긴 리더십으로 정치를 해야 올림픽도 정치도 잘된다. 그래야 평양이니 뭐니 하는 소리도 안 나온다.”

―지도자들에 대한 조언이 있다면….

“중국 당나라 선승인 조주 선사의 일화가 있다. 누군가 충언(忠言)이 뭐냐고 물었더니 선사가 ‘네 어미는 못생겼다’고 답한다. 다시 직언(直言)에 대해 묻자 끽철봉, 쇠방망이를 맞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런 정도의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화재 등 거듭된 재난으로 고통 받는 분들도 있다. 위로의 말씀을 주시면….

“솔직히 위로할 자신이 없다. 법화경에 만사만생(萬死萬生), 하룻밤에 만 번 죽음과 태어남이 되풀이된다지만 혈육을 잃은 그 슬픔을 어떻게 몇 마디로 헤아리고 위로할 수 있겠나.”

그러면서 스님은 원효 스님과 그의 스승으로 알려진 대안 대사의 대화를 언급했다. 어미 없는 너구리 새끼들을 돌보던 대안 대사가 저자에 가서 젖을 얻어오겠다며 그 일을 원효에게 맡겼다. 그 사이 한 마리가 죽자 원효는 염불을 한다. “그 염불소리, 너구리가 알아듣습니까.”(대안) “짐승들이 알아듣는 염불도 있습니까.”(원효) 그러자 대사는 “이게 바로 그 염불”이라며 새끼에게 젖을 먹였다.



고성=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불교계#원로#정휴#스님#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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