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8]“글을 쓴다는 건 내가 숨을 쉬며 살아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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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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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당선 영예의 9인

새봄의 밝은 기운을 한가득 머금은 2018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 이들은 “작가가 된다는 건 말할 수 있는 입을 부여받은 
기분이다”며 미소 지었다. 왼쪽부터 김예솔비(영화평론) 강석희(단편소설) 유지영(동화) 이수진(희곡) 김정현(문학평론) 
신준희(시조) 최유안(중편소설) 변선우(시) 김경원 씨(시나리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새봄의 밝은 기운을 한가득 머금은 2018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 이들은 “작가가 된다는 건 말할 수 있는 입을 부여받은 기분이다”며 미소 지었다. 왼쪽부터 김예솔비(영화평론) 강석희(단편소설) 유지영(동화) 이수진(희곡) 김정현(문학평론) 신준희(시조) 최유안(중편소설) 변선우(시) 김경원 씨(시나리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전화를 끊고 나자 손이 덜덜 떨렸다. 더 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동기에게 운전대를 넘겼다. 강석희 씨(32·단편소설 부문)는 대학원 동기들과 경기 양평군으로 졸업 여행을 가던 중 당선 전화를 받았다. 강 씨는 “다 같이 소리 지르며 기쁨을 나눈 후에는 사흘 동안 진짜인지 의심했다. 동아일보에 가면 ‘당선자가 아니니 돌아가라’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이제야 실감이 난다”며 웃었다.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응모자는 전년보다 25%나 껑충 뛴 2260명. 이 가운데 9명이 당선됐다. 12월 2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인 이들은 서로 눈이 마주치자 수줍게 웃었다.

이들은 당선 연락을 받은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했다. 5년간 글을 써 온 최유안 씨(34·중편소설 부문)는 “소설이 너에게 뭐니”라고 묻는 어머니에게 “난 소설가로 죽고 싶어”라고 말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당선 전화가 왔고 참았던 울음을 꺽꺽 토해냈다. 변선우 씨(25·시 부문)는 서점 화장실에서 연락을 받은 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변 씨는 “믿기지 않아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다. 입덧하는 것처럼 헛구역질이 계속 나왔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쓰라림을 맛봤기에 등단 소식은 ‘벅차다’는 말로는 부족하다는 이가 많다. 10년간 신춘문예에 응모한 신준희 씨(63·시조 부문)는 “매년 원고를 부치러 우체국에 가면 직원들이 알아보고는 ‘부럽습니다’라고 격려해줘 고마우면서도 민망했다”고 말했다. 신 씨는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오래된 나무도 새 잎을 항상 틔운다’는 말을 부여잡고 버텼다. 신춘문예는 ‘연말의 숙제’ 같았는데, 이제 그 숙제를 해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4년 가까이 평론을 준비한 김정현 씨(39·문학평론 부문)는 최종 심사에서 연거푸 탈락하자 좌절감이 커져만 갔다. 김 씨는 “내 능력은 딱 거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에 넘지 못할 벽을 마주한 것 같았다. 아득하게만 여겨졌던 문단의 세계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연출을 전공한 이수진 씨(40·희곡 부문)는 글쓰기에 점점 자신감이 없어졌다고 털어놓았다. 희곡 공모전에 숱하게 도전했지만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이 씨는 “내가 쓴 희곡으로 졸업 공연을 올리고 연출도 했는데 글이 엉성하다 보니 배우들을 설득할 수가 없었다. 완전히 새롭게 써서 다시 공연을 잘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강석희 씨는 5년간 소설을 쓰면서 참 외로웠다고 했다. 강 씨는 “내가 소설 쓰는 걸 어머니가 싫어하셨다. 다큐멘터리에서 이외수 소설가가 철창 안에 들어가 글 쓰는 모습을 보신 후 ‘저렇게 힘든 일을 꼭 해야겠느냐’며 걱정하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선 소식을 듣고 “내가 더 고맙다”고 한 어머니의 말에 코끝이 찡해졌단다.

이들에게 글을 쓴다는 건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의미다. ‘작가’라는 말은 이들이 숨을 쉴 수 있는 힘을 줬다. 김정현 씨는 환한 표정으로 “글쓰기는 나 자신을 증명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아홉 살 때부터 소설가를 꿈꾼 최유안 씨는 1년간 혹독한 슬럼프를 겪고 난 후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최 씨는 “회사 업무상 해외 출장을 자주 가는데 모스크바, 카자흐스탄, 아부다비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호텔방에서도 소설을 쓰는 나를 발견하고는 ‘너 미쳤구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끝까지 하고 싶은 게 소설 쓰기라는 것만은 또렷하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중학생인 두 자녀를 둔 유지영 씨(48·동화 부문)는 새벽 5시부터 한두 시간씩 글을 썼다. 집안일을 마치고 가족들이 잠든 늦은 밤에 다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유 씨는 “내 안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이야기를 쓸 때는 피곤한 줄 모르겠다. 그저 즐겁고 행복하다”며 웃었다. 당선 후 남편과 아이들은 설거지를 하겠다고 자청하며 유 씨에게 글을 쓰라고 격려해 준다.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라는 걸 이들은 잘 안다. 김경원 씨(43·시나리오 부문)는 “시나리오는 영상화되어야 완성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 꾸준히 쓰고 또 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예솔비 씨(23·영화평론 부문)는 “문학평론 수업을 듣다 평론의 매력을 발견했다. 더 집중해서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작업을 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당선작들은 새해 첫 지면과 동아닷컴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어떤 모습의 작가를 그리고 있을까.

“누구나 와서 쉬어가는 동네 어귀의 늙은 느티나무 같은 작품을 쓰고 싶어요.”(신준희 씨)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아이들이 신나게 읽을 수 있고, 마음의 상처도 어루만져 주는 동화를 자아내면 좋겠어요.”(유지영 씨)

“김수영 시인은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고 했죠. 그 말 그대로 우직하게 쓸 겁니다. 진심을 다해서요.”(변선우 씨)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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