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루터가 개신교에 남긴 이데올로기적 유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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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박흥식 지음/284쪽·1만8000원/21세기북스
◇루터의 두 얼굴/볼프강 비퍼만 지음/최용찬 옮김/278쪽·1만6000원/평사리

18일 국내 개봉한 독일 영화 ‘루터’(2003년)의 한 장면. 가톨릭 수도사였던 독일 청년 마르틴 루터(조지프 파인스)가 교회의 면죄부(면벌부) 판매를 비판하는 논제를 발표하고 독일어 성경을 번역한 과정을 그렸다. 사진 출처 youtube.com
18일 국내 개봉한 독일 영화 ‘루터’(2003년)의 한 장면. 가톨릭 수도사였던 독일 청년 마르틴 루터(조지프 파인스)가 교회의 면죄부(면벌부) 판매를 비판하는 논제를 발표하고 독일어 성경을 번역한 과정을 그렸다. 사진 출처 youtube.com
31일은 마르틴 루터(1483∼1546)가 독일 비텐베르크대 궁정교회 문에 ‘95개조 논제’를 못 박아 게시한 지 500년 되는 날이다.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면벌부) 판매를 비판한 이 논제를 성문에 붙이는 루터의 모습은 벨기에 화가 페르디난트 파우얼스의 그림(1872년)을 통해 종교개혁의 상징적 이미지로 각인됐다. 1668년 작센주에서 처음으로 이날을 개신교의 종교개혁 기념일로 삼았다.

이날을 앞두고 루터 관련 서적이 연이어 발간됐다. 26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7월 이후 새로 나온 루터 관련 책은 무려 20종에 이른다.

그 가운데 한국과 독일 역사학자가 쓴 이 두 책은 종교개혁의 의미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루터의 저작과 인간적 실체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교회권력과 국가권력의 대립에 맞물려 이뤄진 종교개혁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현 시점에서 개신교가 나아갈 길을 아울러 짚어냈다.

“가톨릭 수도사 루터는 시대의 요청에 의해 종교개혁 전사로 호출됐다. 그는 신앙의 토대가 복음과 성경이어야 함을 환기시키며 치열하게 교회개혁을 위해 싸웠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 중에는 부정적 요소도 존재한다. 그의 신학에만 관심을 둔다면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사건의 외연을 파악할 수 없다.”

박흥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종교개혁은 개혁신앙을 가진 이들이 새 종파로 인정받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아 시작한 움직임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루터 역시 처음에는 새로운 교회를 만들 의도가 없었으며 95개조 논제를 발표하고 3년 뒤인 1520년 파문이 임박한 즈음에야 소책자와 설교를 통해 신앙개혁에 대한 사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521년 보름스에서 열린 신성로마제국 의회 청문회에 소환된 루터는 “잘못된 행동을 해온 교황과 의회에 따를 수 없다”며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수 없음을 밝혔다. 박 교수는 이후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가명을 쓰며 은거한 루터가 독일어 성경을 완역하는 등 성과를 냈지만 제후의 이권에 의지하고 타협하며 종교개혁의 잠재적 가능성을 제한했다고 비판했다.

교황의 권위에 맞섰지만 신흥 권력인 제후의 편에 서서 평민의 순종을 강요함으로써 봉건 질서에 안주했다는 것. 볼프강 비퍼만 베를린자유대 근현대사 교수는 이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독일 개신교에 대한 비판의 중심에는 루터의 이데올로기적 유산이 자리한다”고 꼬집었다.

그가 제시한 루터의 부정적 유산은 권위주의, 주전(主戰)주의, 반유대주의, 반페미니즘이다. 국가권력을 위한 전쟁을 선하게 여기고, 자본을 찬양하고, 정치적 수단으로 유대인과 여성을 억압한 독일 개신교의 뿌리에 루터의 그림자가 있다는 반성이다.

“루터의 지침을 따른 독일 개신교는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유대인에게 물었다.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다시 복음에 의존한 사람들은 교회의 용인 아래 박해를 당했다. 올해 종교개혁 축제에서 우리는 새로운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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