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나만을 위한 단 한대의 車, 특별함이 달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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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ury Car]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나만의 자동차 만드는 ‘코치빌딩’

코치빌더인 파크 워드가 차체를 만든 롤스로이스의 실버 레이스 랜돌렛. 롤스로이스 제공
코치빌더인 파크 워드가 차체를 만든 롤스로이스의 실버 레이스 랜돌렛. 롤스로이스 제공
사람들은 대부분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을 때 우월감을 느낀다. 그것이 권력이나 재력이어도 좋고, 지식이나 재능, 명예여도 좋다. 특히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은 누가 보더라도 특별하게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내세워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도 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누구에게나 익숙하면서도 가치는 천차만별인 자동차는 특별함을 드러내기에 좋은 아이템이다. 거리를 달리는 수많은 차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든 차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소유자의 자부심을 높이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은 물론 자신과 견줄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보다 호화롭고 고급스럽다면 그보다 더 만족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처럼 특별한 차를 손에 넣으려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자신의 취향에 맞춰 새로 차를 만들거나, 최대한 취향에 가까운 차를 찾아 꾸미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전자를 실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어서, 많은 사람이 후자를 택한다. 만약 후자를 택하고 나만의 차를 만드는 과정을 시작했다면 아마도 코치빌딩(coachbuilding)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은 접하게 될 것이다. 코치빌딩은 럭셔리 카나 슈퍼카처럼 흔치 않은 차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담은 단어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럭셔리 카와 고급 스포츠카가 코치빌딩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차의 실내외 색상과 소재, 일부 편의장비를 소비자 주문에 맞춰 만드는 것을 ‘비스포크’ 제작이라고 한다. 비스포크 제작을 위해 준비된 소재와 색상 견본들. 롤스로이스 제공
차의 실내외 색상과 소재, 일부 편의장비를 소비자 주문에 맞춰 만드는 것을 ‘비스포크’ 제작이라고 한다. 비스포크 제작을 위해 준비된 소재와 색상 견본들. 롤스로이스 제공
코치빌딩은 ‘다인승 마차 제작’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영어 단어로, 그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예들이 귀족과 왕족을 태우고 이동하던 1인승 가마, 영화 ‘벤허’에서 볼 수 있었던 전투용 마차로 대표되는 채리엇(chariot) 등 사람이 타는 이동수단의 탄생에서 기원을 찾기도 한다. 탈것은 누군가가 만들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으므로, 탈것의 탄생으로부터 코치빌딩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코치빌딩의 직접적인 뿌리는 마차 시대와 닿아 있다. 사람과 물건들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도구로 만들어진 마차는 곧 중세 유럽에서 왕족과 귀족을 위해 호화롭게 꾸민 ‘움직이는 예술품’으로 탈바꿈했다. 상류층 사람들이 탄 마차는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상징했다. 영어로 상류층, 부유층을 뜻하는 ‘캐리지 트레이드(carriage trade)’라는 표현에서도 호화 마차를 구매했던 이들이 어떤 부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구매자의 취향과 요구에 맞춰 전문적으로 마차를 만들고 꾸미는 업자들이 생겨났다. 그런 업자들을 가리켜 코치빌더라 했고, 그들이 하는 일은 코치빌딩이 되었다.

19세기 말에 자동차가 발명된 뒤에도 코치빌더의 명맥은 이어졌다. 초기 자동차 시대에도 자동차를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류층이었고, 자동차 역시 구조가 마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오히려 일부 코치빌더는 마차시대보다 더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패션을 중시하던 당시 상류층 가운데에는 자신의 차도 최신 유행에 맞게 새로운 모습으로 꾸미기를 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해마다 바뀌는 유행에 따라 차를 새롭게 꾸미는 일도 많았다. 지금에 와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가능했다. 과거 자동차는 달리는 데 필요한 구동계와 뼈대를 만든 다음 그 위에 탑승공간을 포함한 차체를 얹는 식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유행이 바뀌면 차체만 다시 만들어 얹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동차의 겉모습은 점점 더 화려해졌다. 20세기 들어서자마자 발명된 비행기는 기술혁신의 새로운 상징으로서 자동차 디자인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날렵하고 우아한 공기역학 디자인이 자동차에 스며들기 시작했고, 그런 유행의 변화를 이끈 것 역시 코치빌더들이었다. 마차 시대부터 도제 제도를 통해 장인을 키워온 코치빌더들은 세련된 솜씨로 차 안팎을 꾸몄다. 차체 제작에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했지만, 가죽과 직물, 목재 등 차 안팎을 꾸밀 수 있는 여러 소재를 익숙하게 다루는 사람들도 필요했다. 그들은 대부분 앞서 일한 장인들로부터 과거부터 전해져 내려온 노하우를 전수받고 손에 익을 만큼 충분히 경험을 쌓았다.

업체마다 제작 방식은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 자동차 업체가 롤링 섀시(rolling chassis)라고 부르는 차체 없는 차를 만들어 전달하는 것으로 코치빌더의 일이 시작되었다. 코치빌더는 미리 구매자에게서 들은 취향이나 치장의 수준을 고려해 그림이나 모형을 만들어 확인을 받고, 이어서 실제 크기 모형을 만들어 다시 확인을 받거나 곧바로 제작에 들어갔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만큼, 그 과정에서 같은 롤링 섀시를 쓰면서도 차 안팎은 다른 차들이 나올 수 있었다. 자동차 회사들도 코치빌더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디자인과 꾸밈새가 세련된 차체는 자동차 회사의 이름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주요 럭셔리 브랜드마다 그 나라의 대표 코치빌더들이 짝을 이루어 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자동차 업계가 대량생산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섀시와 차체를 따로 만드는 시대는 차츰 저물어 갔다. 여러 럭셔리 브랜드들이 판매 부진으로 문을 닫으면서 많은 코치빌더가 도산하거나 자동차 회사에 흡수되었고, 일부는 살길을 찾아 다른 사업으로 전향하기도 했다. 몇몇 럭셔리 브랜드는 섀시와 차체를 따로 만드는 방식을 고수할 수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자동차의 대량생산이 보편화되면서 모노코크 구조의 차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코치빌딩에 치명타였다. 차체 자체가 뼈대 역할을 하는 모노코크 구조는 함부로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에, 코치빌더들이 손댈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특히 충돌안전 관련 법규가 강화될수록 제약은 심해졌다. 그 결과 1960년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대부분의 코치빌더들은 문을 닫았다. 다만 이탈리아 카로체리아들은 비교적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다. 차를 꾸미고 차체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접목해 자동차 회사의 새 차 개발 과정에 관여하거나 직접 생산설비를 갖추고 특별 모델을 만드는 등 자생능력을 갖춘 덕분이었다. 그러나 자동차 업체들이 회사 내에 디자인 부서를 갖추고 독자 디자인와 브랜드 DNA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이탈리아 카로체리아들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물론 코치빌딩의 명맥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남들과 다른 차를 갖고 싶어하는 부유층 소비자들이 있고, 그들을 위해 만든 특별한 차 시장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럭셔리 카와 스포츠카 등 일부 소량 생산되는 승용차 가운데에는 아직 현대화된 롤링 섀시에 주문제작한 차체를 입히는 식으로 만드는 것들도 있고, 역시 소수이기는 해도 그런 차들을 전문으로 개조하는 코치빌더들이 남아 있기는 하다.

실내 목재 장식을 가공하는 장인의 손길. 도제 교육을 받은 숙련공들은 자동차 맞춤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롤스로이스 제공
실내 목재 장식을 가공하는 장인의 손길. 도제 교육을 받은 숙련공들은 자동차 맞춤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롤스로이스 제공
그러나 요즘의 코치빌딩은 자동차 회사가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 차의 설계나 구조 등 외부 전문 업체에서 미처 손대지 못하는 부분까지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럭셔리 브랜드들이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 주로 내세웠던 것은 비스포크(bespoke) 제작이었다. 비스포크 제작은 맞춤 옷을 만들듯 차의 구조나 형태에는 크게 손대지 않고 실내외 색상과 소재, 일부 편의장비 등을 소비자의 주문에 따라 만드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컴퓨터 설계의 일반화와 차에 쓰이는 소재의 다양화, 3D 프린팅 등 첨단 기술의 도움으로 더 유연하게 주문제작이나 맞춤제작에 대응할 수 있게 되면서 코치빌딩 개념을 이어나가는 길이 열렸다.

롤스로이스가 올해 5월 공개한 스웹테일(Sweptail)이 좋은 예다. 호화 요트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과 꾸밈새가 돋보이는 스웹테일은 단 한 대만 제작한 특별 모델이다. 특히 실내외가 일반 롤스로이스와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점에서 전통적 코치빌딩 방식의 현대적 재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스웹테일은 롤스로이스의 전성기였던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인기를 끈 고전적 2인승 쿠페의 개념을 되살렸다. 그래서 디자인과 꾸밈새를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존키어(Jonkheere), 파크 워드(Park Ward), 거니 너팅(Gurney Nutting) 등 유명 코치빌더들이 만들어 호평을 얻었던 여러 롤스로이스로부터 차용했다. 그러면서도 여러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수제작한 각 부분은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정밀도와 완성도가 양산차에 가깝다.

이 밖에도 페라리를 비롯한 몇몇 스포츠카 전문 업체들이 소비자의 주문을 받아 양산차와 다른 모습으로 꾸민 차들을 내놓고 있는데, 그 역시 현대적인 코치빌딩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똑같은 모습으로 대량생산되는 차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단 한 대의 차를 위해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에 맞는 부품도 따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차들의 값이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지갑을 열어 하나뿐인 특별한 차를 손에 넣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남들과 다르고 싶은, 그리고 남들에게 없는 차를 갖고 싶은 욕구가 있는 한 코치빌딩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동아일보 스타일 매거진 Q는 이달부터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의 글을 싣습니다. 류 칼럼니스트는 자동차 월간지 ‘자동차생활’, ‘모터매거진’ 등에서 전문기자로 활약했으며 2007년부터 ‘모터트렌드’ ‘오토카’ 등 다양한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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