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덴마크 ‘로얄 코펜하겐’의 페인팅 장인 팔름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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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한개 만드는데 5, 6명 장인손길 필요
두 사람이 함께 할 찻잔, 혼수로 추천합니다”

6일 서울을 찾은 덴마크 왕실 도자기 브랜드인 ‘로얄 코펜하겐’ 페인팅 장인 마이켄 루비 로벤크란스 팔름 씨. 팔름 씨가 로얄 코펜하겐의 ‘플로라 다니카’ 그릇에 그림을 그려보이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6일 서울을 찾은 덴마크 왕실 도자기 브랜드인 ‘로얄 코펜하겐’ 페인팅 장인 마이켄 루비 로벤크란스 팔름 씨. 팔름 씨가 로얄 코펜하겐의 ‘플로라 다니카’ 그릇에 그림을 그려보이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6일 서울 중구 에비뉴엘 본점 글로벌라운지에는 작은 테이블이 차려져 있었다. 그 위에는 여러 그릇이 있었다. 연필 스케치가 그려진 순백색 그릇, 옅게 채색된 그림 그릇, 나뭇잎이 생생하게 튀어나올 것 같은 그림이 담긴 그릇….

그리고 그림 위에 연필과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녀가 있었다.

“고객들에게 작업 순서를 보여주고 싶어 준비했어요. 스케치를 하고, 색칠을 하고 여러 번 굽죠. 그리고 다른 글씨 장인이 제가 그렸다는 사인을 표기해줍니다.”

그녀는 덴마크 럭셔리 도자기 브랜드 ‘로얄 코펜하겐’ 소속 페인팅 장인 마이켄 루비 로벤크란스 팔름 씨다. 이달 4∼8일 5일 동안 전국 각지의 로얄 코펜하겐 입점 백화점에서 고객들에게 시연해 보이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녀가 그림을 그린 그릇에는 ‘MPX’라는 사인이 적혀 있다. 1995년 로얄 코펜하겐 견습생으로 입사한 뒤부터 20여 년간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왔다.

팔름 씨는 로얄 코펜하겐에서도 가장 정교한 작업을 요하는 ‘플로라 다니카’ 라인에서 일한다. 플로라 다니카는 덴마크 식물도감 이름이다. 식물도감에 실린 꽃과 양치류 2500여 종의 그림을 그대로 그릇에 옮기는 것이 팔름 씨의 일이다. 수작업이 많아 플로라 다니카 라인은 접시 하나에 수백만 원에 이른다. 1790년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7세가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에게 보낼 선물로 주문하면서 탄생했다.

플로라 다니카 장인은 로얄 코펜하겐에서도 몇 안 된다. 덴마크 본사에 총 15명. 그중에서 2명은 그릇 가장자리에 도금을 입히는 골드 페인터이다. 팔름 씨와 같은 핸드 페인팅 장인은 13명이다.

로얄 코펜하겐의 플로라 다니카 식기로 차린 테이블. 로열 코펜하겐의 식기는 마이켄 루비 로벤크란스 팔름 씨와 같은 페인팅 장인 들이 자기에 여러번 색을 입혀 탄생한다. 로얄 코펜하겐 제공
로얄 코펜하겐의 플로라 다니카 식기로 차린 테이블. 로열 코펜하겐의 식기는 마이켄 루비 로벤크란스 팔름 씨와 같은 페인팅 장인 들이 자기에 여러번 색을 입혀 탄생한다. 로얄 코펜하겐 제공



―도자기 페인터라는 직업이 생소하다.


“어릴 때부터 드로잉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도자기 공예 전공이 있는 학교에 가기로 했다. 목표는 로얄 코펜하겐의 페인터가 되는 것이었다. 1995년 9월에 얼마 뽑지 않는 로얄 코펜하겐 견습생으로 선발됐을 때 정말 기뻤다. 4년 동안 수련했고, 1999년에는 오버글레이즈드 페인터가 되기 위한 내부 시험에 합격했다.

오버글레이즈드 페인터는 유약을 바른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말한다. 공정이 까다롭지만 유약 위에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훨씬 생생하고 입체적이다.”

―어떤 작업을 거쳐서 그릇이 완성되는지 궁금하다.

“먼저 자기를 제작하는 모델링 팀이 하얀색 자기를 만든다. 그들은 점토가 부드러우면서도 밀도를 가진 상태에서 톱니 모양의 가장자리를 손으로 만든다. 미세하게 구멍을 뚫는 일도 그들이 맡는다. 하얗고 반들반들한 오버글레이즈드 그릇이 완성되면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덴마크 식물도감을 보고 직접 특수 연필로 스케치를 한다. 그 위에 색을 넣고 굽고, 그림을 그리고 굽고를 네댓 번 반복한다. 연필 스케치는 굽고 나면 사라지도록 돼 있다. 그림이 완성되면 바닥에 페인터의 사인과 그림의 라틴어 이름이 적힌다. 글자만 담당하는 장인이 따로 있다.”

―직접 그린 작품이 담긴 플로라 다니카 라인은 주로 어떤 고객들이 찾나.

플로라 다니카 라인의 주전자, 찻잔, 접시. 로얄 코펜하겐 제공
플로라 다니카 라인의 주전자, 찻잔, 접시. 로얄 코펜하겐 제공
“접시 1개를 제작하는 데 적어도 5, 6명의 장인들이 붙어 일주일 정도 걸린다. 가마에서 7번 정도 굽는다. 그러다 보니 비싸서 우리 집에도 이 그릇이 없다(웃음). 덴마크 왕가가 플로라 다니카 라인을 식기로 쓴다. 전 세계 그릇 애호가들도 주로 찾는다.”
―굴곡이 있는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어떻게 기술을 키웠는지 궁금하다.

“계속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플로라 다니카는 최고 수준의 완성도와 섬세함을 요구한다. 생생한 색감과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은 굴곡이 있는 주전자 위에 생생한 야생 식물을 어디에 놓을지 구상하고 스케치하고 색을 입히는 작업을 제일 좋아한다. 특히 주전자 뚜껑 손잡이 장식물에 색을 입히는 작업이 좋다. 너무 아름다우니까.”

―도자기 페인터로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처음 오버글레이즈드 시험에 합격하고 플로라 다니카 장인이 됐을 때. 꿈을 이룬 듯 기뻤다. 물론 실수할까 봐 첫 작업 때 굉장히 떨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이 왕실 최고 훈장인 코끼리 훈장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영광을 주셨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한국은 지금 결혼 시즌이다. 혼수용품으로 추천해 주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두 사람이 함께 할 찻잔 세트! 작업할 때 늘 즐거운 차 주전자도 곁들여서 추천한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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