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윤 요리쌤의 오늘 뭐 먹지?]햄버거를 위한 변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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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다운타우너’의 아보카도 햄버거. 홍지윤 씨 제공
서울 용산구 ‘다운타우너’의 아보카도 햄버거. 홍지윤 씨 제공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chiffonade) 운영자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chiffonade) 운영자
얼마 전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맥도널드의 창립비화를 다룬 영화 ‘파운더(The Founder)’를 봤다.

햄버거의 빠른 제조와 판매를 가능하게 한 자동화 시스템을 고안해낸 건 캘리포니아 출신의 맥도널드라는 성(姓)을 가진 딕과 맥 형제였다. 전국의 식당을 돌며 밀크셰이크 제조기를 판매하는 외판원이었던 레이 크록은 평범하지만 목적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야망이 들끓는 인물이다. 크록은 맥도널드의 성장 가능성을 꿰뚫어 봤고, 결국 맥도널드라는 이름을 빼앗아 전국적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키웠다.

모든 것을 빼앗긴 맥과 딕이 “자동화 시스템만 복사해서 팔아먹어도 충분히 돈을 벌었을 텐데 왜 굳이 이름까지 가져가야 했느냐”고 크록에게 묻는다. 크록은 “시스템이 아니라 이름이다. 맥도널드라는 이름과 황금빛 아치(맥도널드의 상징)를 보는 순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한다. 영화의 핵심 장면이다. 소비자는 단순히 상품 자체만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를 함께 취한다는 사실을 크록은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상품이 아닌 음식이라도 말이다.

1988년 대학에 입학했고 그해 서울 올림픽이 개최됐다. 그리고 서울 강남 한복판에 맥도널드가 국내 1호점을 열었고, 매장이 터져나갈 듯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곳에서 친구들을 가끔 만났지만 그때 먹었던 햄버거의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전쟁 이후에 최고의 호황기였던 1980년대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해외 유학생들이 급격히 늘었고 그들의 대부분은 미국을 향했다.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게 하는 곳이었고 우리가 못 가진 넓고 광활한 땅에 자원이 풍부한 부자 나라였다. 그때 우리에게 햄버거란 한 번은 밟아 보고픈 미국을 미리 맛보는 호기심 충족의 요리였던 게 아닐까.

그때 미국을 맛보고 경험한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만드는 햄버거 식당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만드는 햄버거는 신속한 제조와 판매가 가능한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패티에 토마토, 양파, 상추, 치즈를 한 켜 한 켜 정성스레 쌓아 올려 만드는 수제 햄버거다. 본고장 햄버거 제조의 노하우에 각각의 개성이 더해져 본토의 맛을 능가한다는 곳도 여럿이다. 비벼먹고 쌈 싸먹으며 음식의 레이어를 이해하는 우리의 미학적 유전인자 덕분이라 본다. 오랫동안 햄버거는 패스트푸드의 대명사로서 높은 칼로리에 비만의 주범으로 여겨졌지만 이제 그 오명을 벗어야 한다. 실제 햄버거는 단백질과 야채와 탄수화물의 고른 조합으로 영양적 밸런스가 좋은 요리다. 감자튀김과 액상과당이 많은 탄산음료를 과잉 섭취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chiffonade) 운영자 chiffonade@naver.com

○ 브루클린더버거조인트 서울 서초구 서래로2길 27, 02-533-7180, 브루클린웍스 9800원

○ 다운타우너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42길 28-4, 070-8820-3696, 아보카도 버거 9300원

○ 길버트버거앤프라이즈 서울 종로구 종로3길 17 D타워 3층 파워플랜트, 02-2251-8383, 길버트버거 1만500원
#패스트푸드#파운더#햄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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