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마을] 돌무지에 묻힌 꽃님이는 여전히 엄마가 그립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6월 1일 05시 45분


오천몽돌해변은 자갈밭이다. 바다와 오랜 세월에 깎인 자갈이 영롱한 푸른빛을 띤다. 오래 전 전염병으로 아이들이 죽으면 무덤으로 사용한 돌들이다. 고흥(전남)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오천몽돌해변은 자갈밭이다. 바다와 오랜 세월에 깎인 자갈이 영롱한 푸른빛을 띤다. 오래 전 전염병으로 아이들이 죽으면 무덤으로 사용한 돌들이다. 고흥(전남)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3 금산면 오천리 서촌마을

오랜 세월 척박했던 땅.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세상살이에 대한 의지는 강했고, 집착은 끈질겼다. 강하고 질긴 태도와 능력으로써만 세상은 살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이야기는 쌓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산한 삶을 이어가면서 이야기는 만들어졌다. 밝고 슬프고 아름답고 비극적이어서, 그래서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 설화는 그렇게 오래도록 쌓여 전해져오고 있다. 전남 고흥군을 다시 찾는 이유다. 지난해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고흥군의 땅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이들을 만난 스포츠동아는 올해에도 그곳으로 간다. 사람들이 전하는 오랜 삶의 또렷한 흔적을 확인해가며 그 깊은 울림을 함께 나누려 한다. 매달 첫째 주 및 셋째 주에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일나간 엄마 찾아 바닷가 헤매는 꽃님이
딸 잃을까 엄마는 집에만 있으라 하는데
아버지구름 아래 달님꽃과 놀던 꽃님이
엄마와 약속에 불난 집서 나오지 못하고
푸른빛 돌무지 해변엔 가슴 시린 사연이

고흥군 금산면 오천리 서촌마을 앞 해변은 ‘고흥 10경’ 중 하나인 금산해안경관의 한 절정을 이룬다. 그 중심인 오천몽돌해변엔 크고 작은 자갈이 가득하다. 바다로부터 밀려온 파도에 돌과 돌이 부딪쳐 본래의 뭉툭함이 깎여 생성된 몽돌은 1km 남짓 해안가 호젓한 풍경을 그려낸다. 한쪽에 선 후박나무는 황록색 잎사귀로 풍성하다. 후박나무 밑으로 서로 어깨를 기댄 몽돌은 ‘자갈자갈’ 빛을 낸다.

● 달님꽃이 유일한 친구였던 꽃님이 이야기

서촌마을 한종대(79)씨는 “후박나무엔 벌레가 없다”면서 그 깨끗한 껍질은 약으로도 쓴다고 말했다. 나뭇잎은 마당에서 불로 피워 모기를 쫓는 데 쓰기도 한다. 마을사람들은 이런 후박나무를 아이들이 지켜준다고 믿고 있다.

그 밑으로 깔린 고운 돌들 속에 아이들이 있었다. “과거 전염병 등으로 아이들이 죽으면 경치 좋은 나무 밑에 묻고 돌로 무덤을 만든 것”(한종대씨)이다. 돌무지다. 아이들은 죽은 채로 쉽게 세상을 떠나지 못했고, 깨끗한 나무는 마치 아이들의 영혼이 깃든 양, 사시사철 푸르다.

그 아이들 가운데 여섯 살 꽃님이가 있다. 6년 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갯가로 나가 해삼과 돌미역과 소라를 따며 꽃님이를 거두고 있었다. 그러니 꽃님이는 낮엔 늘 혼자였다. 갯가를 향하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칭얼대기 일쑤였다.

그런 딸아이가 엄마는 안쓰러울 수밖에. 엄마는 하늘 저 높이 뜬 뭉게구름을 ‘아버지구름’이라 말하며 딸아이를 달랬다. 꽃님이는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그렇게 하늘을 향했다. 하지만 아직은 부모의 품이 그리운 나이. 일하는 엄마를 찾아 집밖을 헤매다 길을 잃은 적도 있었다.

꽃님이의 유일한 친구는 마당에 피어 있는 꽃이었다. 꽃님이는 친구에게 “달님처럼 노란색이니까 달님꽃”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던 어느 날. 집에 불이 나고 말았다. 어디선가 튀어 날아온 불똥 탓이었다. 불길은 순식간에 번져갔다. 하지만 꽃님이는 고통 속에서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집밖으로 나가지 않겠다, 엄마와 나눈 약속 때문이었다. 꽃님이는 이불 속으로 기어들고 말았다.

꽃님이는 마을사람들에 의해 수습됐다. 엄마는 아버지구름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닷가로 나아갔다. 그리고 유난히 푸른빛이 도는 자갈들로 딸아이의 주검을 덮어주었다.

“꽃님아, 더 좋은 세상으로 가거라. 거기서는 너 혼자 두지 않고 너랑 잘 놀아주는 어미를 만나거라.”

돌무지 사이로 피어난 노란 달님꽃만이 어미의 슬픔을 함께 감당했다.

● 유난히 맑은 아이들의 자갈

후박나무 밑 고운 돌들 속에 있는 아이들. 한종대씨는 “아이들을 제대로 된 무덤으로 옮긴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씨는 “태풍이라도 오면 파도에 돌과 돌이 이리저리 부딪쳐 나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 소리는 먼 옛날 슬픈 사연을 안고 세상을 떠난 여린 생명의 울음소리일지도 모르겠다. 햇볕을 받아 자그맣게 반짝이는 몽돌의 빛은 어쩌면 어린 소녀의 눈물일 수도 있겠다. 이제는 후박나무와 널리 깔린 자갈들과 그리 유별나지 않지만 돌무지를 이룬 고운 돌들은 설움을 안고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얼굴처럼 순박하게만 보인다. ‘돌무지’라 이름 붙여진 풍광은 그저 그렇게 서러울 뿐이다.

오천몽돌해변은 이제 관광지가 됐다. 몽돌의 크기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큰 탓일까. 온전한 해수욕은 쉽지 않을 터. 하지만 해안을 따라 펼쳐진 풍광만으로도 관광지의 역할로는 충분하겠다 싶다. 하지만 적어도 타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몽돌 속에 새겨진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대신 어렵게 삶을 지탱해온 끝에 해안가 마을로서는 상당한 규모로 340여 주민이 살아갈 수 있게 된 터전이 제법 풍성한 살림살이를 이어가게 해주고 있다는 것을.

※ 설화 참조 및 인용: ‘바닷가 푸른 돌무지’ 안오일, ‘고흥군 설화 동화’ 중)

● 설화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고흥(전남) |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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