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떼려야 뗄 수 없는 날씨와의 기묘한 동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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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기묘한 날씨/로런 레드니스 지음/김소정 옮김/272쪽·2만2000원·푸른지식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을 맞은 사람을 그린 삽화. 저자는 벼락을 맞고 살아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푸른지식 제공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을 맞은 사람을 그린 삽화. 저자는 벼락을 맞고 살아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푸른지식 제공
제목만큼이나 기묘하고 발칙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팩트와 동화 사이를 오가는 환상(?)을 경험했다. 분명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 중 허구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동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건 온갖 정보의 파편들을 절묘하게 요리해낸 작가의 발군의 구성력 덕이다. 게다가 ‘돼지꼬리 땡’이 난삽하게 적힌 학창시절 개인노트를 들춰보는 것 같은 필기체 활자와 화려한 삽화들도 눈을 즐겁게 한다. 독자들은 묵직한 내용임에도 책장을 술술 넘기는 지적 유희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면 이 책의 주제는 날씨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것이다. 이를테면 저자는 벼락을 맞고도 살아난 사람들의 모임을 찾아가 생존자들을 인터뷰하고, 과학자들의 입을 통해 벼락이 발생하는 메커니즘과 벼락 맞은 사람들의 신체 변화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또 ‘추위’를 다룬 챕터에서는 북극과 가까운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섬에 사는 태국 여성이 백야를 이용해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는 얘기를 들려준다. 그가 고국에서 다양한 식물종자를 가져와 힘들게 키우는 건 오직 북극에서 태국 음식을 먹겠다는 일념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추위로 인해 경작조차 불가능한 이 얼음 땅이 전 세계 식량자원의 마지막 보고(寶庫)라는 사실이다. 천연 냉동상태를 이용해 다양한 종자를 영구 보관하는 ‘국제종자저장고’가 여기에 설립됐다. 저장고에는 전 세계 200여 개국에서 보낸 농업용 식물종자들이 보관돼 있는데, 이 중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북한이 보내온 옥수수와 쌀도 들어 있다.

얼핏 관련 없어 보이는 날씨와 정치의 연관성도 흥미롭게 그렸다. 13세기 몽골군의 일본 침략을 좌절시킨 태풍은 일본인들에게 ‘신의 바람(神風·가미카제)’으로 불리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로 이용된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직후 기상현상을 놓고 최고통치자의 신성을 부각하는 데 활용한 북한 언론의 보도 역시 우습지만 21세기에 일어난 실화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아주 기묘한 날씨#로런 레드니스#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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