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성북’을 깎고 빚은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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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의 조각가들’전

‘성북의 조각가들’전에 나온 작품들. 권진규의 1970년대 작 ‘가사를 걸친 자소상’, 송영수의 1967년 작 ‘순교자’, 최만린의 1964년작 ‘이브 64-6’(왼쪽부터).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성북의 조각가들’전에 나온 작품들. 권진규의 1970년대 작 ‘가사를 걸친 자소상’, 송영수의 1967년 작 ‘순교자’, 최만린의 1964년작 ‘이브 64-6’(왼쪽부터).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서울 성북구의 예향(藝香)은 향기롭다. ‘성북동 비둘기’의 시인 김광섭을 비롯해 조지훈 이태준 등 문인들과 김기창 김환기 등 화가,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 미술평론가 최순우 등 뛰어난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에 몸을 두었다.

성북구립미술관의 ‘성북의 조각가들’전은 성북구에 살면서 작업한 조각가 4명의 작품 전시회다. 모두 한국의 근현대 조각사를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김종영 권진규 송영수 최만린은 모두 1940∼1960년대에 걸쳐 이 지역에 정착했다.

김종영 권진규 송영수 작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성북동 아틀리에에서 작품을 만들어냈고 최만린은 지금까지 정릉동 아틀리에에서 작업하고 있다. 저마다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동료로 맺어진 관계다. 성북구립미술관의 아담하고 호젓한 공간에선 이들 네 작가의 조각과 드로잉 54점 및 사진, 영상 자료들을 선보이고 있다.

2층 제1전시실 권진규 작가(1922∼1973)의 작품들은 일반 관객이 친숙하게 생각할 만하다. 한국적 리얼리즘을 선도했던 조각가답게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 많다. 작가의 수발을 들고 잔심부름을 하던 소녀 영희를 두고 작업한 ‘영희’가 대표적이다. 작가 자신의 얼굴을 입체화한 ‘가사를 걸친 자소상’ 옆에는 이번에 최초로 공개된 테라코타 두상이 있다. 1960년대 권진규의 아틀리에를 방문한 동료 최만린이 작업해 놓은 두상을 보고 “참 좋다”며 감탄하자 “그렇게 좋아? 그럼 가져”라며 준 것이다. 얼핏 ‘쿨하게’, 한편으론 무심히 쥐여준 듯한 이 선물은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세상에 나오게 됐다. 권진규 특유의 거친 질감에 담긴 평안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이자 1세대 조각가인 김종영의 브론즈 ‘작품 68-1’. 재료의 물성을 드러내는 추상작업을 했던 김종영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는 1940년대 서울 성북구에 자리를 잡았으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예술 활동을 펼쳐 나갔다.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이자 1세대 조각가인 김종영의 브론즈 ‘작품 68-1’. 재료의 물성을 드러내는 추상작업을 했던 김종영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는 1940년대 서울 성북구에 자리를 잡았으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예술 활동을 펼쳐 나갔다.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3층의 제2전시실에서 관객을 맞는 것은 송영수 작가(1930∼1970)의 ‘순교자’다. ‘용접조각의 대가’로 불린 작가의 작품이다. 부러질 듯 길고 앙상한, 그러나 끝까지 스스로 접지는 않겠다는 신념이 동 용접조각에 그대로 묻어난다. 송영수를 가르쳤던 1세대 조각가 김종영(1915∼1982)의 대표작들도 만날 수 있다. 1968년작 브론즈 ‘작품 68-1’을 비롯해 나무, 돌, 철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작가의 추상 조각들이 나왔다. 작가가 작업했던 아틀리에 주변 풍경을 그린 드로잉과 스케치들도 흥미롭다. 성북동 산기슭에 빼곡히 들어찬 작은 집들을 그린 수채화 ‘동네풍경’은 정겹고도 애잔한 느낌이다.

김종영의 또 다른 제자인 최만린 작가(82)는 생명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조각가다. ‘이브’와 ‘아(雅)’, ‘태(胎)’ 등 근원과 뿌리에 대한 고민을 지나 생명의 근원적 형태를 형상화한 ‘O’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됐다. 1000∼2000원. 6월 18일까지.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성북의 조각가들#예향 성북#성북구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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