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지키는 세상이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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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도토리’]

연극 ‘도토리’에서 수감자들이 도토리가 멧돼지에게 중요한 먹이라는 사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있다. 극단 목화 제공
연극 ‘도토리’에서 수감자들이 도토리가 멧돼지에게 중요한 먹이라는 사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있다. 극단 목화 제공
 상식을 지키며 사는 삶이 과연 가능할까.

 연극 ‘도토리’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지적장애를 지닌 일렬이와 삼렬이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 출소한다. 이들이 감옥에서 세뇌 당하듯 새긴 문구는 ‘남의 물건은 절대로 손대지 않겠다’는 것. 일렬이는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멧돼지 먹이인 도토리를 가져가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인다. 삼렬이는 호박잎을 따 식당에 대준다.

 극단 목화를 창단한 오태석 씨가 극본을 쓰고 연출한 ‘도토리’는 토속적인 정취 속에 흥이 묻어나오는 오 씨 특유의 색깔이 선명한 작품이다. 지난해 초연됐고, 이번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호박밭 주인이 덤으로 호박을 아무리 안겨줘도 절대 받지 않는 삼렬이, 도토리에 손대지 말라고 거듭 당부하며 멧돼지를 위하는 일렬이의 고지식할 정도로 일관된 행동은 선한 웃음을 자아낸다. 두 사람을 둘러싸고 형사, 검사의 딸 경자, 경자 엄마 등이 벌이는 소동은 한바탕 신명나는 굿판을 보는 듯하다.

 이야기의 전개는 압축되거나 생략돼 어찌 돌아가는 영문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을 때도 종종 있다. 출연 비중으로 보자면 일렬이와 삼렬이를 딱히 주인공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해되면 되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냥 즐기면 된다.    

 자유로운 몸놀림 속에 직접 만든 소품을 들고 춤추듯 움직이는 배우들의 몸짓은 흥겹다. 도토리가 멧돼지의 똥을 거름 삼아 참나무로 자라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은 해학적이다. 오묘하고도 도도한 자연의 섭리를 이렇게도 유쾌하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다.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 ‘상식’을 지키는 존재가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이라는 설정은 이런 상식을 실천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세상임을 역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따뜻함이 스며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일렬이와 삼렬이를 도우려는 형사, 검사 아빠가 지은 죄를 대신 사죄하려는 경자, 딸과 함께 티베트로 가 삼보일배를 하며 죄를 씻으려는 경자 엄마의 행동이 그렇다. 물론 이들의 행동은 비현실적이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한데 따지고 보면 세상살이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도 그 중심에는 자연이, 그리고 사람이 있음을 넌지시 일러준다. 송영광, 정지영, 김봉현, 이병용 등 출연.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월 5일까지. 2만∼4만 원. 02-745-3967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연극 도토리#오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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