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기억을 풍경의 이미지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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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개인전 ‘화이트 노이즈’

한진 작가의 유채화 ‘저만치 벽 #6’(2016년). 한 씨는 “슬픔의 감정에 기울어지는 성향이 그림에 반영 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아트 스페이스 풀 제공
한진 작가의 유채화 ‘저만치 벽 #6’(2016년). 한 씨는 “슬픔의 감정에 기울어지는 성향이 그림에 반영 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아트 스페이스 풀 제공
 시각의 경험을 붙드는 작업을 통해 ‘새로움’을 전할 길은 막막해진 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청각, 후각, 촉각의 경험을 끌어온 작품을 적잖이 만날 수 있다.

 하지만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 스페이스 풀에서 청각과 시각의 엇박자를 표현한 회화 30여 점을 선보이는 한진 작가(37)는 딱히 어떤 새로움을 찾아 청각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본래 시각보다 청각을 통해 대상을 인지하고 기억하는 성향을 가졌다”고 했다.

 “사람의 첫인상도 얼굴 생김에 앞서 목소리 톤과 억양의 이미지로 받아들인다. 내 그림 역시 그렇게 경험한 대상에 대한 청각적 질감을 표현한 결과물이다. 소리의 기억이 가진 ‘울림’에서 작업을 이어내는 힘을 얻는다.”

 개인전 표제는 ‘화이트 노이즈’. 유채 물감으로 두툼하게 바른 무채색 회화와 연필 드로잉 작품을 걸었다.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을 배제한 텅 빈 도시 한구석 모퉁이 공간 또는 어지럽게 얽힌 풀숲의 이미지를 담았다. 기름을 유난히 많이 사용해 비에 젖은 듯 보이는 정경이 많다. 최근작 중에는 아직 건조가 끝나지 않은 것도 있다.

 “기억을 현실로 불러내면 대개 물기 머금은 감정을 얻는다. 그런 물성을 표현하기 위해 오일을 많이 사용한다. 사람과 동물이 없는 것은 사뮈엘 베케트의 단편극 ‘쿼드’의 영향을 받은 까닭이다. 사건이나 대화 없이 배우들을 반복적으로 움직이게 해 공간의 발견을 추구하는 그 연극의 방향성을 그림에 끌어오려 했다.”

 몇몇 회화는 애써 그린 이미지를 덮어 가리려는 듯 빼곡한 흰색 붓질로 덧입혀 놓았다. ‘고치나 거미줄처럼 보인다’는 질문에 한 씨는 “소리의 기억을 돌이키고 응집시켰다 소거하는 과정을 표현하려 한 것”이라고 답했다.

 “의식한 기억과 그러지 않은 기억이 삶에 얽혀 있듯이 한 작업 안에는 의식한 행위와 그러지 못한 행위가 수없이 교차한다. 스스로 그 경계점을 최대한 섬세하게 관찰하며 드러내고 싶었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한진 개인전#화이트 노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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