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잔잔하고도 서늘한 묘사 ‘공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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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 펴낸 소설가 정이현씨

정이현 씨는 “현실의 누구나 ‘문제적 인물’ ‘소설적 인물’ 아닌가”라면서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문득 흘리는 말 한마디에서 작품 속 인물의 성격을 만들어 간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정이현 씨는 “현실의 누구나 ‘문제적 인물’ ‘소설적 인물’ 아닌가”라면서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문득 흘리는 말 한마디에서 작품 속 인물의 성격을 만들어 간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서른 살에 등단한 정이현 씨가 이젠 마흔 넷이 됐다. 그 사이 가정을 꾸렸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니 정 씨의 현재가 이상할 리 없다.

 그런데 정 씨의 현재는 눈길이 간다. 그가 등단했을 때 문단에 준 충격 때문이다. 등단작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발칙했다. 주인공 유리는 남자의 학벌과 출신을 따지고, 맞춤한 남자를 잡는 데 자신의 순결을 이용하려는 여자다. 당시 한국 소설들이 인간의 내면을 깊이 탐색해 들어간 반면 정 씨는 ‘현대란 이런 것’이라며 상큼하게 뒤통수를 쳤다. 이어 싱글 여성의 원 나이트 스탠드 같은 소재를 대담하게 담은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가 히트를 치면서 그에게는 ‘도발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정 씨가 최근 펴낸 ‘상냥한 폭력의 시대’(문학과지성사·사진)는 ‘오늘의 거짓말’ 이후 9년 만의 소설집이다. 침묵했던 게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간 ‘너는 모른다’ ‘안녕, 내 모든 것’ ‘사랑의 기초’ 등 활발하게 장편을 펴냈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프리랜서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았다.

 긴 호흡에 지구력이 필요한 장편보다 단기집중력이 요구되는 단편이 결혼 생활엔 적합한 게 아니냐는 의문에 작가는 “(단편이) 힘들었다”고 했다. “단편을 쓰는 동안엔 예민하게 곤두서 있어야 하는데 다른 일과 병행하니 현실적으로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일이란 장편 집필을 가리키기도 하고 육아를 가리키기도 할 것이다. 작은 체구에 눈웃음 그대로, 작가는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낮에 바쁘게 일하다가 늦지 않게 데리러 가는 일상을 반복한다고 했다.

  ‘상냥한…’의 단편 7편을 하나로 묶는 주제는 ‘작가의 말’에 담겨 있다.

  ‘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손바닥이 칼날에 쓱 베여 있다. 상처의 모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누구든 자신의 칼을 생각하게 된다.’

 겉으로는 예의 바르게, 세련되게 대하지만 실은 비하하고 멸시하는 것, 작가가 ‘상냥한 폭력’이라고 부르는 행위다. 도시의 싱글 여성이었다가 40대 중반이 된 작가가 보기에, 우리가 사는 현대란 이런 상냥한 폭력의 시대다.

 “(소설집) 전체를 반복해 읽어보니, 서로의 진심과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상처와 모멸을 주고받는 인물들이 선명하더라. 우리 시대의 ‘새로운’ 폭력의 모습을,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하다가, ‘상냥한 폭력’이라고 해봤다. ‘예의 바른’이나 ‘친절한’, ‘아무렇지 않은’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도 좋겠다.”

 정이현 하면 떠오르던 발칙함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잔잔하고도 서늘한 묘사가 ‘스윽’ 와 닿는다. 소설 속 평범한 사람에게서 어떤 상황에선 위악적인, 또 어떤 때는 위선적인 모습이 나올 때 독자는 마냥 비난할 수 없다.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기도 해서다.

 “초기의 소설들을 좋아한다는 20대 여성을 지금도 종종 만난다. 대학 강의실에서 이 소설을 놓고 남녀 학생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고도 하더라.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도 20대 여성들의 삶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구나 싶기도 하고.”

 위선과 위악이 섞인 이 시대를 지나 정 씨가 소설을 통해 어떤 시대의 군상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정이현#상냥한 폭력의 시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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