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등반은 상대도 심판도 없는, 오직 자신과의 싸움일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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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산악계 두 봉우리 메스너-엄홍길

고수는 고수를 알아봤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무산소로 완등한 ‘세계 산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오른쪽)와 아시아 최초로 14좌를 정복한 한국의 대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지난달 30일 울산 울주군 상북면 신불산 자락 한 리조트 앞에서 서로를 치켜세우며 ‘엄지 척’을 하고 있다. 울주=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고수는 고수를 알아봤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무산소로 완등한 ‘세계 산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오른쪽)와 아시아 최초로 14좌를 정복한 한국의 대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지난달 30일 울산 울주군 상북면 신불산 자락 한 리조트 앞에서 서로를 치켜세우며 ‘엄지 척’을 하고 있다. 울주=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목에 걸고 있는 ‘지’는 어디에서 구했나?”(메스너)

 “네팔에서 선물로 받아 20년 넘게 목에 걸고 있다. 당신은 어디에서 구했나?”(엄홍길)

 “에베레스트 등반을 할 때 원주민이 선물로 준 것을 30년 넘게 지니고 다닌다.”(메스너)

 지난달 30일 울산 울주군 상북면 신불산 자락에 있는 한 리조트에서 13년 만에 만난 두 산악 영웅은 반갑게 포옹한 뒤 서로의 목걸이를 주제로 말문을 열었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해 ‘세계 산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라인홀트 메스너(72)와 아시아 최초로 14좌를 정복한 한국의 대표 산악인 엄홍길 대장(56·휴먼재단 상임이사). 올해 처음 열리는 울주세계산악영화제(추진위원장 박재동) 개막식에 메스너가 참석하자 엄 대장이 “멀리서 손님이 왔는데 안 찾아보면 예의가 아니다”라며 메스너의 숙소를 찾았다.

 이들이 목에 걸고 있는 ‘지’는 히말라야 주변에서 나는 원석으로 만든 목걸이다. 티베트 천주로 불리는 ‘지’는 홍옥수나 산호석, 마노 등 천연석에 선한 눈동자 모양을 여러 개 새겨 넣은 일종의 부적이다. 히말라야 사람들은 이것을 ‘붓다 아이(Buddha eye)’, 즉 부처님의 눈으로 부른다.

 서로의 목걸이를 만져본 두 영웅은 자연스럽게 산 얘기로 넘어갔다. “에베레스트의 어려운 코스를 네 번이나 오른 당신이 참 대단하다.”(메스너) “산소통 없이 히말라야 14봉을 완등한 당신이 진정한 세계 최고 산악인이다.”(엄 대장) 환하게 웃으며 두 산악인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엄 대장과 메스너의 만남은 2003년 5월에 이어 두 번째. 둘은 고 에드먼드 힐러리 경(뉴질랜드)이 1953년 5월 29일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 것을 기념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에베레스트 초등 50주년 기념식’에서 처음 만났다.

 “메스너는 에베레스트 등 히말라야 14봉 무산소, 단독, 최고난도 코스 등정 등 8000m급 고산에서 인간이 한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위대한 산악인이다. 다른 산악인들에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 가장 큰 업적이다.” “한 번도 하기 어려운 에베레스트를 지금까지 네 번이나, 그것도 매번 코스를 바꿔 가며 난코스만 골라 등반한 엄 대장이야말로 최고다.” 두 영웅은 서로를 치켜세우며 ‘엄지 척’을 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 히말라야 14봉 무산소 등정

“앗, 이거 어디서 구했나?” 메스너(왼쪽)와 엄홍길 대장은 13년 만에 만나면서 서로의 목에 걸린 ‘지’에 관심을 보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울주=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앗, 이거 어디서 구했나?” 메스너(왼쪽)와 엄홍길 대장은 13년 만에 만나면서 서로의 목에 걸린 ‘지’에 관심을 보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울주=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메스너는 1970년부터 1986년까지 히말라야 최고봉인 에베레스트(해발 8848m) 등 히말라야 8000m급 14봉을 인류 최초로 산소통 도움 없이 완등했다. 8000m급 고산지대에서는 산소가 해수면의 3분의 1에 불과하기에 산소통 등 보조도구 없이 순수하게 인간의 능력으로는 오를 수 없다는 것이 당시까지 과학계와 의학계의 정설이었다. 엄 대장은 “힐러리 경이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반해 산악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면 메스너는 히말라야에서 인간 한계를 극복하며 모든 등반 기술을 보여준 위대한 산악인”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메스너가 본격적인 고산 등반을 한 것은 1970년. 중학교 교사였던 메스너는 은행원이었던 동생 귄터 메스너와 틈나는 대로 함께 등산하고 암벽을 올랐다. 형제가 자일 파트너였던 셈이다. 독일 원정대장인 카를 헤를리그코퍼 박사가 1970년 이 형제에게 낭가파르바트(8126m) 등정을 제안했다. 이들이 선택한 코스는 수직 절벽이 3500m나 돼 낭가파르바트에서도 가장 어려운 루팔 남벽. 1953년 등반에 처음 성공하기까지 31명의 산악인이 숨져 ‘킬러 마운틴’으로 불릴 정도로 악명 높은 코스였지만 메스너 형제는 성공했다. 이 형제에게는 8000m급 첫 등정이었다.

 하지만 메스너는 하산 길에 동생 귄터가 눈앞에서 눈사태에 휩쓸려 실종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겨우 하산한 메스너는 원주민에게 발견돼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메스너 형제와 연락이 두절됐던 원정대는 ‘메스너가 정상 등정 기록을 세우기 위해 동생을 무리하게 끌고 산에 올랐다’며 비난했다. 메스너는 “절대 그렇지 않다”며 부인했지만 한동안 이 같은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메스너는 이때의 심정과 동생을 잃은 슬픔을 적은 책 ‘벌거벗은 산’을 2004년 펴냈다. 동생 귄터의 시신은 실종 35년 만인 2005년 하산하던 디아미르 계곡에서 발견됐다. 빙하가 녹으면서 시신이 떠내려 온 것을 원주민이 발견한 것이다. 메스너는 눈에 익은 등산화로 동생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메스너는 1일 울주산악영화제의 한 특강에서 “산에 다가가는 것은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자신과 내면을 탐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에베레스트를 과연 산소통의 도움 없이 도전할 수 있겠느냐고 사람들이 생각했고 의사까지 위험하다고 했다”며 “그러나 내 안의 허약함을 이겨내고 산소통 없이 도전해 결국 정상까지 올랐다”고 설명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88년 캐나다 캘거리 겨울올림픽에서 메스너에게 메달을 수여하겠다고 제안했다. 히말라야 14좌를 최초로 완등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메스너는 “등반에서는 싸우는 상대도 없고, 심판도 없다. 단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메달을 받는 것은 등반이 경쟁임을 자인하는 것과 같다. 산을 오르는 코스가 사람마다 다른데 어떻게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라며 메달 수상을 거부했다.

 셰르파의 도움 없이 단독 등반하는 산악인으로도 유명한 메스너는 “등반가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셰르파에게 맡기고 뒤따라 오른다면 그건 등반이 아니라 관광일 뿐”이라고 말했다.

 메스너는 현재 이탈리아에 메스너 마운틴 뮤지엄(MMM)이라는 이름의 5개 테마 산악박물관을 MMM재단을 통해 운영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MMM 운영을 위해 카스텔로 피르미아노 등 고성(古城)을 메스너에게 제공했다. 이 박물관에는 여성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모두 오른 한국 산악인 오은선(51)이 마지막으로 안나푸르나를 등정할 때 사용했던 피켈도 전시돼 있다.

아시아 최초 14좌 완등

 엄 대장의 휴대전화 번호 끝자리는 8848이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 높이(8848m)에 맞춘 것이다. 엄 대장은 1985년부터 에베레스트 정복 도전을 시작했다. 남서벽을 통해 등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어 1988년 9월에 재도전해 성공한 이후 네 번이나 성공했다. 2001년 시샤팡마(8027m)를 정복하면서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정복했다. 이어 히말라야 위성봉으로 불리는 얄룽캉(8505m)과 로체샤르(8383m)를 오르면서 2007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14좌+위성봉 2개)를 올랐다.

 죽을 고비를 맞은 큰 부상을 극복하고 다시 고산 등정을 이어간 엄 대장은 ‘인간 승리의 드라마’로 통한다. 엄 대장은 안나푸르나 등정에 3번 실패하고 1998년 네 번째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정상을 500m쯤 남겨둔 7600m 지점에서 함께 갔던 셰르파의 추락을 막기 위해 낚아챈 로프가 오른쪽 발목에 감기면서 빙벽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발목이 180도 돌아가 있었고 뼈도 2군데 부러졌다. 2박 3일간 다리를 질질 끌며 밧줄에 의지해 4500m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와 겨우 살 수 있었다. 지금도 이때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고 있다. 엄 대장은 이 부상 이후에도 8000m급 5좌를 더 올랐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정상에 서면 기쁨보다는 호흡 곤란 때문에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숨이 좀 쉬어지면 엄청난 허무감이 밀려오고 그 다음은 살아서 내려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초조해집니다.”

 엄 대장은 ‘2005 한국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티베트 명칭) 휴먼 원정대’의 등반대장을 맡아 에베레스트에서 2004년 5월 숨진 후배 산악인 박무택(당시 35세)의 시신을 수습했다. 이때부터 그는 ‘엄 대장’으로 통한다. 휴먼 원정대의 활약상은 지난해 영화 ‘히말라야’(황정민 주연)로 만들어져 상영되기도 했다.

 엄 대장은 요즘 네팔에 학교 짓는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의 자신이 있게 한 히말라야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2010년 5월 5일 히말라야 산맥 해발 4060m 지점 오지마을에 1호를 연 이후 지금까지 11개 학교를 지었다. 히말라야 16좌 등반을 기념해 16호까지 개교할 계획이다. 등반 도중 숨진 셰르파의 유가족 24명에게는 생활비와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3년부터 매년 7월 참가를 신청한 전국의 대학생 100∼150명과 함께 비무장지대(DMZ) 평화통일 대장정을 하고 있다.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임진각까지 350km를 15박 16일간 걸으며 청년들에게 안보의식과 통일 염원을 심어주고 있다. 중학생들에게는 매월 두 번째 토요일에 서울 근교 산을 안내하고 있다.

“산악문화가 정착됐으면”

 두 영웅은 “이제 고산을 오르는 것 못지않게 산악문화도 잘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세계적인 산악인을 많이 배출한 한국에 산악 문화를 바꿀 영화나 문학 등 제대로 된 콘텐츠를 채운 산악박물관이 없는 것을 두 산악인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겨우 걸음을 뗀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한국 국민들에게 산악문화를 보급시키는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30여 년 산을 쫓아다닌 신영철 월간 사람과산 편집주간은 “메스너는 자기 확신에 대한 고집이 세다면 엄 대장은 큰형 같은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4일 폐막한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대상은 폴란드 산악인 예지 쿠쿠치카의 등반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 ‘유렉’(감독 파베우 비소찬스키)이 차지했다. 5일간의 영화제 기간에 5만4000명이 다녀갔다고 울주군은 밝혔다.

울주=정재락기자 raks@donga.com
#엄홍길#라인홀트 메스너#에베레스트#히말라야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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