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고아들의 자존감 높여줬던 비발디 ‘신부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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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비발디
안토니오 비발디
“타오르는 태양의 끝없는 열기 아래/사람도 가축도 축 늘어졌다/소나무마저 바싹 말라 간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집 ‘사계’ 중 ‘여름’에 붙은 소네트(짧은 시)입니다. 요즘 날씨를 묘사한 것처럼 느껴지네요. 그저께까지 제가 있었던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발디가 살았던 베네치아의 대운하도 강렬한 햇살에 하얗게 빛났고, 관광객들은 바닷바람으로 부족해 연신 손부채질을 해댔습니다.

비발디의 작업환경은 다른 작곡가와 크게 달랐습니다. 그는 신부(神父)였고 베네치아의 보육원 ‘피에타’에서 일했습니다. 당시에도 관광지로 이름났던 베네치아에는 부모를 알 수 없는 아기가 바구니에 담겨 운하에 둥둥 떠내려 오는 일이 많았고, 베네치아 정부는 이런 아이들 중 여자아이들을 피에타에서 연주가로 키웠습니다. 이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비발디가 맡았죠.

이 피에타의 합주단과 합창단은 관광상품으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비발디의 작품 중에 유독 독주자의 기교를 한껏 발휘하는 협주곡과 독창자가 빛나는 교회용 합창곡이 많았던 것은, 개개인이 부각되는 무대를 가짐으로써 이 ‘버림받았던’ 여성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려는 배려 때문이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비발디 신부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비발디가 세상을 떠난 날도 더운 여름이었습니다. 타는 이탈리아의 하늘 아래서는 아니었습니다. 만년에 그는 유럽 각지에서 오페라를 공연해 성공하려는 의욕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중 오스트리아 황제 겸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6세가 그를 빈으로 초청했습니다. 빈으로 향하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황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빈에 도착한 그에게 고관들은 “돌아가신 선왕의 일이라서 난 모르겠는데…”라며 손을 내저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도 준비하지 못한 그는 고열에 시달리다가 1741년 7월 28일 6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그의 ‘사계’ 전곡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풍요한 느낌의 ‘가을’ 세 개 악장까지 들으면 무더위도 조금은 가신 듯 느껴질 것 같습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안토니오 비발디#사계#소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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