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박수근]궁핍한 시대의 진실을 그린 박수근의 畵魂

윤범모 미술평론가 입력 2016-06-29 03:00수정 2016-06-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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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의 작품들. 왼쪽 사진은 하드보드지에 유채물감으로 그린 ‘나무와 여인’(1956년). 오른 쪽은위부터 ‘빨래터’(1950년)와 ‘우물가’(1953년). 모두 캔버스에 유채. 박수근은 아내를 처음 만난 장소인 빨래터 등 마을공동체의 소박한 생활공간 모습을 화폭에 즐겨 담았다. 박수근미술관 제공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린 화가, 그가 ‘국민화가’라고 불리고 있는 박수근이다. 진실은 복잡하거나 화려한 꾸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단순하다. 여기서 단순함은 주제나 소재 혹은 표현 형식에 이르기까지 다 그렇다. 박수근 그림의 특징은 궁핍한 시대의 평범한 풍경을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전쟁 이후의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화려한 색깔이 없다. 무채색의 세계이다. 그래서 그림은 회색조 바탕에 우둘투둘한 질감을 기본으로 한다. 거기에 배경을 생략하고 대상을 단순하게 묘사한다. 화사한 치장도 없지만 군더더기도 없다. 직선에 가까운 선묘(線描)는 주제의식을 두드러지게 한다. 바위에 새긴 시대의 풍경이다.

박수근이 즐겨 그린 소재는 평범한 이웃이다. 아낙네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아낙네는 도시 변두리나 시골에서 살고 있으며 생활을 담보하고 있다. 그들은 시장을 오가면서 삶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비록 행상이라 해도 흥청거리면서 거래를 하거나 놀고 있는 모습이 없다.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는 모습, 바로 인고(忍苦)의 모성(母性)이다. 박수근 그림에는 정겨운 가족도가 없다. 특히 노동력이 있는 청장년층의 남자가 없다. 가장(家長) 부재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물론 ‘청소부’와 같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물들은 대부분 실내에 있지 않고 노상이나 들판과 같은 실외에 있다. 그렇다고 역동적인 현장에서 뭔가 도모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들판에서 바람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건강한 이웃들이다.

박수근은 나무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의 나무는 썰렁한 겨울나무이다. 그것도 필요 이상으로 가지가 잘려나가고 줄기조차 굽어 있다. 정상 발육과 거리가 있다. 박수근 나무는 ‘몸부림’ 그 자체이다. 게다가 이파리 하나 허용하지 않는 나목(裸木)이 박수근표 나무이다. 나목은 갈등과 궁핍의 시대를 상징한다. 박수근 그림의 대표적 도상은 나목과 아낙네를 함께 그린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우리네의 고향 풍경이고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래서 한국적 정서를 집약시킨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고향회귀 정신이 존재하는 한 박수근 그림은 하나의 표상처럼 사랑받게 될 것이다. 박수근 그림은 우리 고향의 초상(肖像)이기 때문이다.

왜 박수근인가. 물질과 황금만능시대와 거리가 있는 박수근 세계는 왜 주목의 대상으로 부상되고 있는가. 바로 진실함의 예술적 보고(寶庫)이고, 또 민족적 정서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박수근은 이른바 아무런 ‘배경’이 없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아주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림공부도 독학으로 겨우 했다. 여기서 독학이라는 자립정신은 매우 중요하다. 독학은 고난의 길이었지만 결국 독자성 확립이라는 선물을 안게 했다. 동시대 대부분의 화가들은 여유를 즐기면서 ‘진실’을 외면하려 했다. 예술의 기본인 상상력이나 시대정신 혹은 개성까지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미술사와 거리감이 생겼다. 박수근은 몸으로 알려주었다. 물질적 풍요로움은 곧 훌륭한 예술과 직결시켜 주지 않는다. 예술은 고통의 산물이고 고독한 고행이다. 박수근 작품은 색채 범람시대에 주는 무채색의 ‘착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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