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박한규]서울 사람, 김천 사람이 된다는 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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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대학에 진학하면서 사실상 처음 서울 나들이를 했던 지독한 경상도 촌놈이 작년까지 35년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늘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밀어내기 어려웠다. 그럼 누가 진짜 서울 사람이냐 물으면 답이 궁하지만, 심리적으로 늘 무늬만 서울 사람이었다.

지난해 초부터 작심하고 서울 사람이 되기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했는데 8월 김천으로 옮겨 왔으니 결과적으로 ‘정떼기’ 과정이 되어 버렸다. 북한산 인수봉, 관악산 연주봉, 청계산 매봉까지 오르는 데 20년이 걸렸고 덕수궁, 경복궁, 창덕궁이야 데이트 필수 코스라 몇 번 가보았지만 후원은 여전히 미답의 구중궁궐이었다. 마음먹고 찾기로 한 곳은 서울에만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종묘, 후원, 탑골공원 등이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늦게 찾아온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들 수 없었고 후원은 그렇게 푸근할 수 없었다. 종묘에서는 스러진 왕조의 쓸쓸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고 돌았다.

중앙고속도로가 생기기 전까지 김천은 차로든 기차로든 경상도로 가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곳이라 들어는 보았지만 들러 본 적은 없고 연상되는 것이라고는 직지사 정도인 곳이다.

지난해 이주 후 ‘짝퉁’ 서울 사람으로 살았던 35년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김천 곳곳을 부지런히 다녔다. 휴일에는 주변의 명소를 두루 찾았으며 지역 특산인 호두, 자두, 포도는 줄기차게 먹었다. 명실상부한 김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제는 제법 신문에 나오지 않았고 인터넷을 뒤져도 구석에나 있는 명소, 맛집, 가격이 저렴한 곳 하나둘 정도는 발굴했다. 김천은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이라지만 대표선수는 역시 직지사와 청암사다. 특히 직지사 관음전(觀音殿)은 관음증(觀淫症)을 자극할 정도로 예뻐서 모시고 갔던 어느 시인은 “요염하다”고 했다. 낮게 가지를 드리운 소나무와 청단풍, 홍단풍의 호위를 받고 있는데 이곳에 눈이라도 올라치면 발걸음 떼기가 쉽지 않다. 계단 앞 작은 화단에는 철따라 갖가지 옷으로 갈아입는 꽃들이 맵시를 자랑한다. 승가대학이 있는 청암사는 그 아기자기함 때문에 한눈에도 비구니 절인데 특히 오래된 가람들은 보통의 절간과는 확연히 다르고 누마루까지 달아 낸 극락전은 어느 대가에 손색이 없다. 청암사 근처에 있는 100년 된 증산양조장이 하루빨리 ‘3대 막걸리’를 다시 빚어야 이 동네에서 처음 만난 닭발편육이랑 궁합을 한번 맞추어 볼 텐데.

애초에는 서울 사람도 김천 사람도 없었다. 어디서든 제 하기 나름이다. 어떻게 사느냐에 달렸다. 오늘도 김천을 즐기면서 즐겁게 살아간다.

※필자(54)는 서울에서 공무원, 외국 회사 임원으로 일하다 경북 김천으로 내려가 대한법률구조공단 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박한규
#서울 나들이#서울 사람#김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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