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강남 밖에서 돌아본 ‘서울의 용광로’ 강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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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탄생/한종수 계용준 강희용 지음/332쪽·1만5000원·미지북스

197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현대아파트 신축공사장 인근에서 소를 몰며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 1960년대의 압구정 일대는 대부분 농지와 배나무 과수원이었다. ⓒ전민조
197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현대아파트 신축공사장 인근에서 소를 몰며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 1960년대의 압구정 일대는 대부분 농지와 배나무 과수원이었다. ⓒ전민조
서울 영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영동(永東)이 ‘영등포 동쪽’을 뜻하는지는 졸업하고 23년이 지나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1960년대에 한강 이남의 유일한 구(區)가 영등포구였다는 사실, 한강 나루터에서 배에 실은 황소가 뒷걸음질치는 바람에 선박이 뒤집혀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영동대교 건설이 탄력을 받았다는 ‘썰’도 처음 접했다.

개발 전의 강남 약도.
개발 전의 강남 약도.
강남 송파 서초구는 1963년 1월 1일 서울시 행정구역이 변경되면서 중랑 도봉 노원 강서 양천 구로 금천 관악 강동구와 더불어 새로이 서울로 편입된 지역이다. 1968년 강남 지역 모습을 묘사한 한 신문기사는 “전화 없이 살아가는 이곳 주민 20만여 명은 급한 사고가 발생해도 병원이나 경찰에 연락할 길이 없어 전화 있는 동네로 달음박질해야 한다”라고 썼다.

책은 1962년 화신그룹 총수 박흥식의 ‘남서울 계획’ 제안, 1969년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 준공, 1976년 경기고등학교 이전, 1981년 경부선 고속터미널 완공, 1989년 한국종합무역센터 트레이드타워 완공 등 1970년대에 본격화된 ‘영동 개발’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풀어놓았다.

살핌의 눈매는 가볍고 짜임도 그리 조밀하지 않다. 한남대교에 대한 간략한 소개 뒤에 가수 혜은이가 부른 노래 ‘제3한강교’ 관련 에피소드를 길게 붙여놓은 식이다. 단점이라기보다는 후루룩 쉽게 읽히도록 의도한 구성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구 이론을 끌어다가 거대한 블록을 만든 강남 거리는 걷고 싶어지는 풍미라고는 없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는 섣부른 단정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걷고 싶어지는 풍미’란 객관적 선악이 아닌 주관적 호오(好惡)에 따른 판단일 따름이다. 시시콜콜한 개인적 기억을 꺼내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고교 선배인 가수 김현철 씨가 1989년 발표한 데뷔앨범 수록곡 ‘동네’의 가사로 넉넉하다.

“짧지 않은 스무 해를 넘도록 나의 모든 잘못을 다 감싸준 나의 동네에 올해 들어 처음 내린 비. 나에겐 잊혀질 수 없는 한 소녀를 내가 처음 만난 곳. 둘이 아무 말도 없이 지치는 줄도 모르고 온종일 돌아다니던 그곳.”

저자들은 각각 중문학, 법학,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도시재생과 토지개발 관련 업무를 해왔다. 강남 개발에 관여한 사람들의 기억, 건축가의 저서와 신문기사 인용, 강남 바깥에서 강남을 바라보며 떠도는 뜬구름 같은 얘기가 대부분이다. 그곳에서 살아가며 세월과 기억을 쌓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20년 전 어느 저녁 친구를 기다린 강남역 뉴욕제과 앞 거리, 여자친구와 눈꼴사나운 줄 모르고 가위바위보를 하며 한 계단씩 오르던 예술의전당 돌계단, 연잎과 청개구리가 가득했던 삼성동 봉은사 연못의 기억이 몇몇 페이지 위에 성냥불 환영처럼 잠깐씩 되살아났다 금세 멀어졌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강남의 탄생#한종수#계용준#강희용#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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