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별을 따기 위한 셰프들의 ‘맛있는 전쟁’이 시작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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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가이드’ 서울편 발간

미쉐린가이드 조사관들의 암행조사를 주제로 찍은 콘셉트 사진. 하단에 있는 미쉐린 가이드 뉴욕 편(레드가이드)은 2005년부터 나왔다. 미쉐린코리아 제공
미쉐린가이드 조사관들의 암행조사를 주제로 찍은 콘셉트 사진. 하단에 있는 미쉐린 가이드 뉴욕 편(레드가이드)은 2005년부터 나왔다. 미쉐린코리아 제공
유명한 음식점일수록 요리사들의 어깨는 무겁다. 몇 평 안 되는 공간에 박혀 하루 저녁에 100인분이 넘는 요리를 해야 한다. 개수대와 화덕, 조리대 사이에서 4, 5명이 어깨를 부딪쳐 가며 지나다니는 주방의 모습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이런 일을 겪으며 성장한 요리사들은 그래서 마크 트웨인의 모험소설 주인공 톰 소여처럼 모험담을 늘어놓곤 한다. 불에 데어 생긴 물집, 칼에 베인 영광의 상처들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서울 온 ‘미식의 바이블’


이 모험가들이 이제는 별을 따러 간다. 세계적으로 ‘미식의 바이블’로 통하는 레스토랑 안내서 ‘미쉐린(미슐랭) 가이드’의 서울편이 올해 안에 발간되기 때문이다. 미쉐린코리아는 최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포시즌스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서울편 발간 계획을 밝혔다. 미쉐린가이드가 발간되는 것은 세계에서 27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 도쿄, 홍콩·마카오, 싱가포르에 이어 4번째다. 미쉐린가이드는 레스토랑에 별점을 주는 레드가이드와 여행 정보를 담은 그린가이드 두 종류가 있다. 미쉐린가이드 서울편은 레드가이드다. 인쇄본과 디지털 버전이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로 제작되며 매년 개정판이 발간된다. 그린가이드 한국편은 2011년부터 이미 나오고 있는데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일반적으로 미쉐린가이드로 통용되는 것이 레드가이드이기 때문이다.

사실 미쉐린 가이드를 두고 타이어 업체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90년 미쉐린 타이어의 창업자인 앙드레 미쉐린과 에두아르 미쉐린 형제가 운전자에게 필요한 식당과 숙소 정보를 담아 무료로 배포한 것이 미쉐린가이드의 시작이다. 미쉐린 타이어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흰색 타이어로 두른 마스코트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은 이 가이드가 전 세계 레스토랑과 호텔의 전문가들에게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미쉐린가이드는 식당의 음식을 별점으로 평가한다. 별 1개 등급은 요리가 특별히 훌륭한 식당, 2개는 멀리까지 찾아갈 만한 식당, 3개는 요리를 먹으려고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은 식당을 의미한다. 별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은 미쉐린 타이어의 마스코트인 비벤덤(Bibendum) 그림문자(픽토그램)가 붙는다. 외식 업계 관계자는 별을 두고 “업계에서는 성서로 여길 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칼의 노래


승부는 오로지 음식으로만 이뤄진다. 미쉐린가이드에는 △요리 재료의 수준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요리의 개성과 창의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 등 5가지 평가 기준이 있다. 모두 맛과 관련된 것이다. 베르나르 델마스 미쉐린그룹 부사장도 “분위기나 서비스는 숟가락과 포크가 X자로 겹쳐진 모양의 픽토그램 1∼5개로 표시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도쿄의 건물 지하상가에 있는 한 초밥집은 별 세 개를 받았다. 이 초밥집은 화장실도 건물에 있는 공용화장실을 사용한다. 홍콩에서도 인테리어가 구멍가게 수준인 딤섬집이 별 하나를 받았다. 이 때문에 일부 유럽과 미국의 요리사들은 “분위기도 요리의 일부”라며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래도 셰프들 사이에서는 미쉐린가이드가 생기면 요리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정한 ‘칼의 노래’가 시작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한 요리사는 “잘나가는 식당일수록 ‘별’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더 맛있고 다양한 요리가 나올 것”이라며 “벌써부터 식당 주인이 요리사를 압박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별점의 저주’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당장 별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이웃 식당들과의 경쟁 때문에 셰프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커질 것이다. 해외에서는 별 3개를 받았던 유명 셰프가 별 2개로 떨어지는 바람에 자살하는 일까지 있었다. 또 손님들이 지나치게 몰려 음식의 질이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해외에서는 이 때문에 별점을 반납하는 식당도 있다고 한다.

조금 더 근본적인 물음도 있었다. 서울이 과연 미쉐린가이드가 나올 만한 곳이냐는 것.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아직 20∼30년 동안 요리만 연구한 사람이 많지 않아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 줄 수 있을지 걱정된다. 유명 셰프가 뜨기 시작한 것도 얼마 안 되지 않았느냐”고 털어놨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내실을 잘 다진다면 해외에서 한식이 더 큰 성공을 거두는 반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적인 의견도 내놓았다.

어찌됐든 곧 세계 최고 권위의 음식 평가서 앞에 서울이, 한식이 민낯을 드러낸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q매거진#미쉐린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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