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환자복 입은 의사, 의료현장의 민낯과 마주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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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된 의사들/로버트 클리츠먼 지음/강명신 옮김/488쪽·1만9000원·동녘
컬럼비아대 정신과 교수인 저자… 테러로 여동생 잃고 우울증 경험
권위주의 벗고 환자가 되어 겪은 진료 시스템의 문제점 지적

의사들은 환자가 돼 보니 응급실부터 분만실까지 병원의 구조가 의사 중심으로 짜여 있고 약의 부작용으로 인한 고통이 과소평가되는 것을 실감했다고 고백한다. 미국 인기 의학드라마 ‘하우스’. 동아일보DB
의사들은 환자가 돼 보니 응급실부터 분만실까지 병원의 구조가 의사 중심으로 짜여 있고 약의 부작용으로 인한 고통이 과소평가되는 것을 실감했다고 고백한다. 미국 인기 의학드라마 ‘하우스’. 동아일보DB
경험만큼 처절한 깨달음을 주는 건 없다. 드라마 ‘추노’의 유명한 대사도 있지 않은가. “당해 봐야 아는 거야.”

미국 컬럼비아대 정신과 교수인 저자는 9·11테러로 여동생을 잃은 후 우울증에 빠졌다. 몸이 무너져 내리고 말로 하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 처음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이었다. 대부분의 의사처럼 저자 역시 의사는 아프지 않을 것이란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이후 저자는 환자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자신처럼 환자가 된 의사 70명을 심층 인터뷰해 그들의 목소리를 날것 그대로 담아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을 비롯해 유방암, 백혈병, 복부암 등의 판정을 받은 의사들은 현실을 부정하지만 이내 공포에 휩싸인다. 병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로 유명한 김혜남 정신과 전문의는 책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에서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뒤 그 끔찍한 고통을 환자들처럼 견뎌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이들의 육성은 공감이 결여된 진료 현장과 진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도려내 보여준다. 진료를 받느라, 온갖 검사를 받느라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기본이고 약으로 인한 불면증, 구역질, 두통 등 이른바 ‘가벼운 증상’은 실제 겪어보니 진을 다 뺀다. 암 환자인 내과 전문의 샐리는 말한다. “항생제를 맞기 전 구토방지제를 달라고 고집 피우지 않았으면 몇 시간 동안 게워냈을 거예요.”

유방암에 걸린 정신과 전문의 데보라는 금발 머리카락을 잃는 것이 항암 치료로 인한 고통보다 훨씬 괴로웠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방사선 치료 후에 한번 빠진 머리카락은 다시 나지 않는다고 설명해주지 않았다.

환자들이 평소 말하고 싶었거나 말해도 무시당했던 사연들이 의사 환자들 입에서 그대로 흘러나오는 걸 읽노라면 아프면 누구나 같아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조울증을 앓는 정신과 전문의 수잔은 외친다. “환자에게 ‘왜 약을 안 먹고 있나요?’라고 말하는 건 쉽죠. 그러나 하루에 열일곱 개의 알약을 먹는 게 쉬운 일인가요!”

가슴을 할퀴는 의사들의 무심한 한마디는 ‘의사 환자’ 역시 피해가지 않았다. 림프종을 앓는 내과 전문의 월터는 “암이 구석구석 퍼졌습니다. (중략) 죽게 될 것입니다”란 건조한 말을 듣는다. 심근경색을 앓는 신생아의학 전문의 허브는 말한다. “수술 전날 내가 죽을 가능성이 5%라는 말을 듣고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생존 가능성이 95%라고 들었으면 훨씬 나았을 거예요.”

이들은 환자 체험을 통해 “두 눈을 완전히 떴다”고 고백한다. 병원에 복귀하자 회진할 때 서서 환자를 내려보는 대신 의자에 앉아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환자들이 호소하는 통증에도 더 귀를 기울였다.

‘환자 의사’의 솔직한 이야기는 의료계 종사자들의 인성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권위와 관료주의에 갇혀 ‘사람’을 보지 못하는 의료계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의사에게 환자와 대화하는 법과 환자를 대하는 자세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의료계 종사자들에게 간곡히 권하고 싶은 책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환자가 된 의사들#로버트 클리츠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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