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버려진 낡은 거리… 박물관-하이브리드 공간으로 살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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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서유럽의 ‘도시 재생 사업’

오래된 공장-버려진 창고 이용해 박물관-빈티지 카페 등
새로운 공간으로 바꾸는 사업 ‘인기’

최근 서유럽에서는 낡은 공장 건물이나 버려진 창고를 창조적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다. 도시 재생 사업은 생태 예술과 지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중이다.

프랑스 랑스에 들어선 루브르 분관은 투명성과 개방성을 콘셉트로 하는 전시공간에 고대부터 19세기까지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매년 70만 명이 찾는다. 랑스=정기범 씨 제공
프랑스 랑스에 들어선 루브르 분관은 투명성과 개방성을 콘셉트로 하는 전시공간에 고대부터 19세기까지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매년 70만 명이 찾는다. 랑스=정기범 씨 제공


지은 지 100여 년 된 양조장이 프라다 재단으로

프라다 창업자의 손녀이자 수석 디자이너, 미우차 프라다는 최근 사회공헌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패션 회사의 한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그 중추적 역할은 1993년 발족한 프라다 재단이 맡고 있다.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이자 밀라노 엑스포 예술 감독을 맡았던 첼란트를 영입해 지난해 5월 프라다 재단의 새 건물을 세웠다. 이를 위해 프라다는 세계적 건축가 램 쿨하스에게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해 밀라노 남부의 버려진 철로변 터를 창조의 땅으로 변신시켰다. 100여 년 된 양조장이 있던 1만9000m²가 환골탈태했다.

쿨하스는 1890년대에 세워진 건물의 역사성을 유지하면서도 모던함이 한데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냈다. 재단 내 건물로는 다큐멘터리 전문 영화관, 유리와 알루미늄이 주로 쓰인 단기 전시관, 유리를 통해 내리쬐는 빛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계된 상설 전시관, 카페 등이 있다. 모든 건물은 하나의 세계처럼 연결되었다. 여기에서 고전주의 조각상부터 루이즈 부르주아, 댄 플래빈, 로버트 고버, 로리 앤더슨과 같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까지 다양한 미술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클래식과 레트로의 이미지로 노스탤지어를 떠올리게 하는 카페 ‘더 바 루체’는 프라다 재단을 더욱 빛나게 하는 장소다. 2014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웨스 앤더슨에게 디자인을 맡기기 위해 미우치아 여사가 많은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앤더슨은 1950년대 밀라노 분위기를 재현한 인테리어부터 메뉴 선정과 플레이팅 방식에 이르기까지 직접 관여해 영화 속 세트장을 방문한 듯한 신선한 경험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선로변에 들어선 그라운드 컨트롤.
선로변에 들어선 그라운드 컨트롤.

버려진 탄광 도시에 들어선 루브르 분관

벨기에, 영국, 독일의 국경에 있으며 파리에서 북쪽으로 200여 km 떨어진 도시, 랑스(Lens)에 들어선 루브르 분관은 폐허로 전락한 도시에 활력소다. 프랑스 문화재 지방분산 정책에 따라 메스에 문을 연 퐁피두 분관과도 맥을 같이한다. 랑스 박물관 건립을 위해 투자된 비용은 11억7000만 유로로 재정의 60%는 랑스가 속한 노르파드칼레 지방에서, 20%는 유럽 문화 기금이, 나머지 20%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했다.

이 도시는 세계 제1차 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2차 대전 당시에는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다는 이유로 연합군의 폭격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난 후 광산 산업으로 활기를 되찾았지만 석탄 이용의 감소로 1960년대부터 탄광이 하나둘 문을 닫았고 1986년에는 마지막 탄광이 문을 닫았다. 그 결과, 주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났고 남은 사람들 다수가 실업자가 됐다. 그 무렵 루브르 분관에 대한 프로젝트가 발표되고 다른 네 도시와의 경합을 물리치기 위해 랑스의 시장과 시민들이 똘똘 뭉쳐 박물관 건립을 이끌어냈다.

이곳의 설계는 프리츠상 수상자인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참여한 일본의 건축 설계업체 ‘SANAA’가 맡았다. 프리츠상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상이다. 조경 작업에는 유명 조경가인 미쉘 데빈느가 참여했다. SANAA는 루브르랑스의 설계를 마친 이듬해인 2014년에 일본 가나자와 시에 혁신적인 미술관을 세우기도 했다.

루브르랑스는 투명성과 개방성을 통해 주변 환경 및 공간들과 상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루브르 궁전의 권위적인 위계를 허물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낮은 건물(1층과 지하)을 지향한다.

7000평의 땅 위에 세워진 다섯 부분의 건물 중 하이라이트는 ‘시간의 갤러리’. 300m가 넘는 유리 벽면을 통해 밖에서 안이 투영되도록 설계됐다. 고대부터 19세기까지의 작품을 시대 순으로 전시하는데,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달리 조각과 회화 작품을 한 공간에 전시한다. 칸막이 없이 탁 트인 공간 자체가 스펙터클한 미술의 역사와 관람객의 소통을 이끌어낸다. 개관 첫해에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여기로 옮겨와 관광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현재는 렘브란트, 푸생, 루벤스와 같은 유명 작가들의 회화 작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매년 70여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면서 이 지역 교육과 문화 그리고 경제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고 있는 루브르랑스는 예술 공간을 넘어 버려진 공간의 새로운 탄생을 보여주고 있다.
루브르 분관 전경.
루브르 분관 전경.

선로변에 버려진 건물이 가장 시크한 장소로

유로스타와 탈리스 등 국제선 주요 철도 노선의 기착지인 파리 북역 아래쪽에 있는 메트로 마르카데-푸아소니에 역 근처에 위치한 그라운드 컨트롤(Paris Ground Control)은 세상과 단절된 또 하나의 세계다.

가드가 서 있는 정문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마주하게 되는 이 공간은 2009년 이후 버려져 있던 파리 철도청 소유의 기관차 정비소와 창고 등이 3㏊(헥타르·1㏊는 1만 ㎡)의 면적에 들어서 있다. 카페, 바, 레스토랑, 빈티지 가게 등이 한데 모인 하이브리드 공간을 지향한다.

선로변에서는 프랑스 어른들의 쇠구슬치기인 페탕크와 핀란드식 놀이인 몰키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한 관상용 닭이 사는 생태 공간과 바이오 농작물을 키우는 작은 농장도 볼 수 있다. 이웃한 창고 건물 안에는 친환경적인 가구와 중고 옷가지 등을 파는 빈티지 숍, 이탈리안 피자가게 등이 있다. 파리지앵들은 주말에 가족과 함께 브런치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일렉트로 음악 콘서트, 전시, 요가와 댄스, 뜨개질, 수염 손질 등의 강의에 사람들이 몰린다.

글·사진 밀라노·랑스·파리=정기범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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