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8년 공들인 동북아역사지도 폐기 위기… 무슨 속사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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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재단, 서강대 산학협력단 최종보고서 접수거부 논란

서강대 산학협력단이 만든 서기 221∼265년의 동북아역사지도(오른쪽). 낙랑, 대방, 현도 등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표기돼 있다. 왼쪽 지도는 중국 요서 지방에 한사군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재야사학계 견해. 동아일보DB

《8년간 70여 명의 중견 학자가 참여해 완성한 동북아역사지도가 폐기 수순을 밟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부 산하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은 지난달 18일 동북아역사지도 편찬 연구 용역을 수행한 서강대 산학협력단에 “지도에 하자가 있다”며 최종 보고서 접수를 거부한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이와 함께 재단은 연구 용역비 잔금 1억5000만 원을 지불할 수 없으며, 지난해 이미 지급된 3억5000만 원을 모두 회수하겠다고 통보했다.》

동북아역사지도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고대부터 근대까지 한민족의 역사 강역을 시대별로 표기한 것이다. 2008년부터 총 47억 원의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서강대 산학협력단은 “재단의 일방적인 조치를 수용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산학협력단은 역사·고고학계 교수 72명으로 구성된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지도를 제작해 왔다. 협력단은 또 최종 보고서에 대한 재심사를 지난해 12월 30일 재단에 요구했으나 양측 입장 차가 뚜렷해 보고서가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재단이 산학협력단에 통보한 동북아역사지도 하자 이유는 △옛 지명에서 한글 표기가 빠져 있고 △동북아 전도(全圖)에서 한국이 부각되지 않은 점 △부적합한 투영법 등 지도 제작기법상의 지적 사항이 대부분이다. 장석호 재단 역사연구실장은 “지리학을 전공한 전문가들이 따로 심사한 결과 기술적으로 만족할 수준의 지도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며 “지도의 역사적 내용과는 무관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산학협력단은 역사지도의 핵심인 역사적 사실 혹은 강역 등에 오류가 있다면 수용할 수 있지만, 지도 제작기법상의 이유로 8년의 연구 성과를 폐기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위원장을 맡은 윤병남 서강대 교수(사학)는 “재단의 지적 사항은 오류 차원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들”이라며 “지엽적인 문제를 갖고 내린 극단적인 결정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계는 국회에서 불거진 한사군(漢四郡) 위치 논란이 재단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한사군은 기원전 108년 중국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뒤 설치한 통치기구. 동북아역사지도 최종본에는 사학계의 통설에 따라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표기돼 있다.

앞서 지난해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을 비롯한 재야 사학계는 “한사군은 요서 지방에 있었다”며 “한사군을 한반도 북부에 표기하는 것은 일제 식민사학을 계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 열린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에서도 여야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한사군을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까지 비화되자 김호섭 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에서 “동북아역사지도 검토 과정에서 고조선 영역이나 한군현 위치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며 “한사군 한반도 북부설과 요서설을 모두 소화하도록 연구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산학협력단에 참여한 학자들을 비롯한 주류 학계는 재야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한사군 요서설은 학술적 근거가 희박하다고 본다. 특히 평양에서 일제강점기부터 낙랑군 고분과 목간 등이 무더기로 발굴되는 등 명확한 고고학적 증거를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는 “한사군 논란이 문제라면 공개적인 학술 토론을 벌이면 될 일”이라며 “학자들의 오랜 연구 성과를 식민사학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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