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획 한 획, 붓이 가고 멈춘 뜻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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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만 작가 ‘거시와 미시’ 전

신영상 작가가 너비 2.1m, 높이 1.5m의 마지(麻紙) 캔버스에 그린 ‘율(律) 9902’. 1967년 한국화회를 창단하고 국내 추상수묵화의 기반을 다진 그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데 네덜란드 추상화가 피터르 몬드리안을 자주 언급해 왔다. 서울대미술관 제공
신영상 작가가 너비 2.1m, 높이 1.5m의 마지(麻紙) 캔버스에 그린 ‘율(律) 9902’. 1967년 한국화회를 창단하고 국내 추상수묵화의 기반을 다진 그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데 네덜란드 추상화가 피터르 몬드리안을 자주 언급해 왔다. 서울대미술관 제공
한참 망설이다 간담회 중단을 청했다. 주요 전시작을 슬라이드 영상으로 보여주며 덧붙이던 설명이 멈췄다. 11월 22일까지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거시(巨視)와 미시(微視): 한국과 대만 수묵화의 현상들’전. 안내 줄을 벗어나 홀로 한참 전시실을 맴돌며 안도했다. 이런 그림을 원본 아닌 사진과 말로 먼저 접하게 하는 건 관람객의 행복을 앗는 일이다. 기사를 위한 사진과 글 역시 송구할 따름이다.

김호득 작가의 ‘산, 아득 1’. 좌우를 뒤집은 한글 단어 일필휘지로 찰나의 에너지를 전했던 최근작과 다른 양상으로 자신의 신체를 작품에 투영했다.
김호득 작가의 ‘산, 아득 1’. 좌우를 뒤집은 한글 단어 일필휘지로 찰나의 에너지를 전했던 최근작과 다른 양상으로 자신의 신체를 작품에 투영했다.
김호득 작가(65)가 올해 작업한 ‘산, 아득 1’은 너비 3m, 높이 2.5m의 면직 캔버스에 그린 작품이다. 축소한 사진만 봐서는 어림할 길 없는 덩치의 산하가 덮쳐든다. 그는 이번 신작에 붓을 쓰지 않았다. 캔버스를 세워두고 먹물에 담근 손가락으로 산세의 흐름을 그려나간 지두화(指頭畵)다. 한 발짝 다가가 들여다보면 심장 박동을 알리는 모니터 속 그래프를 닮은 선이 산세의 파도를 촘촘히 이루고 있다. 맞물려 겹친 맥놀이가 번져 이룬 지형도. 구상이면서 추상이다. 정신영 책임학예연구사는 “작가가 그림을 그려 나가다 캔버스 오른쪽을 얼마간 남겨두고 지쳐 멈췄다”고 했다. 남긴 여백은 그대로 바다다.

황보하오 작가의 ‘생생(生生)’. 고전적 풍취와 스타일의 속박에 대한 거리낌 없이 재료의 본질적 특성에 집중하는 신세대 작가의 자유로움을 드러냈다.
황보하오 작가의 ‘생생(生生)’. 고전적 풍취와 스타일의 속박에 대한 거리낌 없이 재료의 본질적 특성에 집중하는 신세대 작가의 자유로움을 드러냈다.
각 변 길이가 126cm인 정사각형 한지 4장을 모아 건 임현락 작가(52)의 ‘호흡-1초’는 관람객의 눈을 끌어당겨 작가가 남긴 필획(筆劃) 흔적 하나하나를 짚어보라 권하는 전시 주제를 대변한다. 4개의 이미지는 붓질이 시작되거나 멈춘 지점의 여러 양상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본 듯 구성됐다. 그림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작가마다 천차만별인 붓질 한 땀 한 땀의 미세한 완성도 차이임을 확인시켜 준다.

37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는 한국 작가 5명과 대만 작가 4명이 참여했다. 순탄하지 않은 근대를 견딘 두 나라의 수묵화는 필획의 존재감에 지역의 전통적 세계관이 스며 있음을 보여준다. 황보하오 작가(34)의 ‘생생(生生)’(2015년)은 김호득 작가의 ‘산, 아득 1’ 반대편에서 번져 나온 듯한 비구상의 지형도다. 그는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하고 먹물보다는 서양화 재료를 많이 쓰면서 나만의 기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캔버스 없이 전시실 벽면에 종이를 그대로 붙였다. 점이 모여 능선을 이루고 땅이 희미해져 바다에 닿는다. 닮은 듯 전혀 다른 땅의 모습이다.

너비 2.3m, 높이 4.8m의 수묵화 ‘리우 계곡’(2009년)을 출품한 리이훙 작가(74)는 “캔버스를 비스듬히 뒤로 눕혀 걸어 달라”고 요청해 미술관 설치담당자를 애먹였다. 자연을 이해하고 화폭에 담아 재구성하는 양식에 지연(地緣)이 또렷이 작용함을 알 수 있다. 리마오청의 ‘소리와 그림자 2-2’(2010년), 신영상의 ‘율(律) 9902’(1999년)는 붓질에 소리의 흐름을 녹여 담은 전혀 다른 두 방식이다. 전시실 한쪽 벽에 ‘의재필선화진의재(意在筆先畵盡意在·뜻은 붓보다 앞서고 그림이 다해도 남는다)’라는 9세기 당나라 때 미술사학자 장언원의 글을 걸었다. 시간을 넉넉히 잡고 찾아가 필획 뒤 남은 뜻을 살피길 권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거시와 미시#수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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