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나치 독일군은 어쩌다 惡이 되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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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병사들/죙케 나이첼, 하랄트 벨처 지음/김태희 옮김/580쪽·3만2000원·민음사

1942년 우크라이나에서 독일군 기동대 하사가 민간인을 총살하고 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의 악행이 전쟁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결과라고 지적한다. 민음사 제공
1942년 우크라이나에서 독일군 기동대 하사가 민간인을 총살하고 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의 악행이 전쟁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결과라고 지적한다. 민음사 제공
2001년 11월 독일 역사학자 죙케 나이첼은 우연히 영국 국립보존기록관에서 800쪽가량의 두툼한 서류 뭉치를 발견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포로가 된 독일군들이 나눈 대화를 도청해 타이핑한 문서였다.

“열다섯 살짜리 러시아군 소년병 두 명을 잡았소. 스스로 무덤을 파게 했죠. 바로 한 아이를 쏴 죽이고 또 다른 아이에게 시체를 구덩이에 넣으라고 했소. 하하” “폴란드 도심에 폭탄을 투하했어요. 수많은 사람이 죽는데, 점차 즐거워졌죠. 오락 같은 거였지요. 기분이 상쾌해져요.”

이들은 자신들이 행한 온갖 폭력과 학살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했다. 그간의 인터뷰나 보고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날것’, 그대로였다. 충격을 받은 저자는 미국 워싱턴에서 10만 쪽에 달하는 녹취 문서를 추가로 찾아낸다. 이어 심리학자 하랄트 벨처와 연구한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홀로코스트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자는 묻는다. 입대 전 평범한 농부, 전기공이던 독일인을 임신부나 아기를 총으로 쏴 죽인 이야기를 웃으며 하는 ‘괴물’로 만든 원인이 무엇일까?

기존 연구에선 주로 이데올로기나 인종주의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도청 기록을 종합해 보면 독일군들은 정작 이념이나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인종주의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지만 주요 원인은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이라는 상황이 이들에게 특정한 생각을 하게끔 하는 ‘프레임(준거 틀)’을 줬다는 사실이었다.

저자들에 따르면 전투는 독일군에게 하나의 일상 업무였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고향 농장에서 씨를 뿌리는 것과 유사한 행위로 인식됐다. 1941년 10월 독일 경찰국 발터 마트너가 아내에게 쓴 편지다.

“처음에는 쏠 때 손이 좀 떨렸소. 하지만 익숙해지기 마련이오. 조금 지나자 담대하게 겨냥해서 아이, 젖먹이까지 총으로 쏘았소. 나도 집에 젖먹이가 둘 있다는 것이 떠오르긴 했지만…. 고통 없는, 빠르고 좋은 죽음이잖소.”

무섭다. 세밀한 학살 묘사가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 때문이다. 신념을 가진 위대한 존재처럼 포장되지만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이성을 버리고 사회적 맥락에 따라 학살도 서슴지 않는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두려운 것이다. 한 시대와 사회 속 인간이 거대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쟁 같은 거대한 프레임에 들어가면 개인의 신념은 하찮아진다. 어떻게든 전쟁을 막고 피해야 한다는 것이 책의 결론이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나치의 병사들#나치#제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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