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배의 神品名詩]숭례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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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김남조(1927∼)

지나가려느냐 배고프진 않느냐
간절하게 보내고, 가는 길 아슴히 바라보는
아아 그 숭례문
송별의 대왕이시여

나라 성문의 맏형이자
나라 보물의 으뜸 어른이여 숭엄하도다
사무쳐 고통스런 우리 사랑이어라

육백 세 고령이신 몸이
홀연 불 질러져 불의 태풍 속에
소신공양이라니.
그러나 역사의 영혼이 천벌보다 먼저 당도하여
거룩한 뼈는 구했으니
우리 몸의 살비듬에서
정갈한 한지 한 장씩을 울음으로
그 뼈에 입히나이다

불멸의 숭례문이여
순결한 큰 가슴이여
불과 재를 털고 일어서는 새 생명의 영험으로
온 세상의 아픈 이를 고치는
치유와 가호의 대문 되옵소서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는
신의 수명이시옵소서


남대문 이름이 더 살갑게 와 닿는 국보 제1호 숭례문은 서울의 관문이며 얼굴이다. 조선 왕조가 개국 4년에 처음 도성을 쌓으며 짓기 시작해 1398년에 완공되었으니 조선 왕조 500년 역사의 수문장이 아닌가. 대목장 죽정 최유경(竹亭 崔有慶)이 지었다 하며 숭례문(崇禮門) 현판은 양녕대군이 썼다고 ‘지봉유설’에 적혀 있다. 세종 때와 성종 때 고쳐 지었다 하나 우리나라 성문 건축물로 가장 오래되었으며 15세기 목조건물의 대표작이자 국가의 상징적 보물인데 2008년 어이없는 방화로 전소되어 온 국민의 노여움과 설움을 쏟게 하였다.

불길 속에 사직의 거룩한 성전이 재로 내려앉는 것을 보며 팔순 노시인은 “육백 세 고령이신 몸이/홀연 불 질러져 불의 태풍 속에/소신공양이라니” 가슴을 치고 발을 굴렀으리라. 그리고 “우리 몸의 살비듬에서/정갈한 한지 한 장씩을 울음으로/그 뼈에 입히나이다” 하고 몸을 던져 재 속에 살아남은 사리를 구하고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불멸의 “순결한” 큰 가슴으로 젖을 물린다.

숭례문만이 아니다. 우리 국토의 산과 강 어디를 밟아도 역사의 유적지요 문화재의 전시장이다. 조상들이 물려주신 이 위대한 유산들을 더욱 소중히 지키고 목숨껏 사랑해도 모자랄 일이다.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는/신의 수명”을 우리 모두 살뜰히 받들 일이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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