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색감 속 거침없는 감정의 파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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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추상 ‘트랜스 아방가르드’ 대표하는 伊작가 산드로 키아 展

2009년 작 ‘키스’ 연작 중 하나인 ‘Almost a Kiss 4’. 컬쳐앤아이리더스 제공
2009년 작 ‘키스’ 연작 중 하나인 ‘Almost a Kiss 4’. 컬쳐앤아이리더스 제공
27년 전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 관련 자료를 낱낱이 수집한 사람이라면 혹시 이 그림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구름 위인지 땅 위인지 언뜻 분간하기 어려운 배경 위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팔짱을 낀 채 달리고 있는 뭉툭한 체형의 두 남성을 그린 석판화 ‘선수들’. 박서보의 ‘문자’, 김기창의 ‘동방의 별’과 함께 제24회 서울 올림픽 공식 미술 작품 22점에 포함된 그림이다. 작가는 10월 4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인전 ‘환상과 신화’를 여는 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키아(69). 특별한 인연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키아 단독 기획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40대 초에 그린 ‘선수들’이 키아의 스타일을 집약적으로 살필 수 있는 그림은 아니다. 어쩌면 모든 작품이 마찬가지다. 1980년대 것부터 최근작까지 키아의 회화 107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이 작가가 하나의 뚜렷한 스타일에 연연하지 않고 끊임없이 수정과 변화를 도모해 왔음을 보여 준다. 한 가지 특징만이 뚜렷한 일관성을 유지하며 모든 시기를 관통한다. ‘거침없음’이다.

‘기습(Agguato·2009년).’ 고전 회화의 표현 기법을 되짚어 살리면서 발랄한 내용과 구성으로 현재 진행형의 생명력을 드러내는 작가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컬쳐앤아이리더스 제공
‘기습(Agguato·2009년).’ 고전 회화의 표현 기법을 되짚어 살리면서 발랄한 내용과 구성으로 현재 진행형의 생명력을 드러내는 작가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컬쳐앤아이리더스 제공
키아는 1970년대 후반 추상적 개념 미술의 흐름을 거스르며 일어난 ‘트랜스 아방가르드’ 그룹의 대표 작가다. 트랜스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구상 회화의 전통적 양식과 테크닉이 가진 가치를 재조명하려 애썼다. 고전 회화의 요소를 가져와 자신의 색채, 구성, 스토리텔링을 통해 재구성하려 한 노력의 흔적을 작품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2009년 작 ‘키스’ 시리즈다. 선과 면과 색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체하고 재조합하며 정열적으로 좌충우돌해 온 이 화가는 입맞춤하는 남녀의 머리를 클로즈업한 연작 9점에서 전과 달리 차분히 정리된 형태와 채색을 택했다. 하지만 캔버스 밖으로 넘어오는 감정의 파고는 두툼하다. 불같은 욕정, 쌉쌀한 망설임, 달콤한 기대, 애끓는 실망, 황홀한 기쁨, 서러운 고독, 속절없는 슬픔이 차례로 어우러져 다가든다. 키아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역의 언덕배기 마을에서 자신의 작품을 레이블에 붙인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와인도 그림처럼 다양한 이미지를 담아 냈을지 궁금해진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정열의 색감#트랜스 아방가르드#산드로 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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