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파괴된 채로 계속 남아있는… 언어의 흥망성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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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랄리아스:언어의 망각에 대하여/대니얼 헬러-로즌 지음/
조효원 옮김/346쪽 1만8000원 문학과지성사

먼저 에코랄리아스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직역하면 언어 메아리, 한자로 쓰면 반향어(反響語)인데 사라진 언어지만 다른 언어의 틈새에 남아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고대 앵글로색슨족과 싸우던 스칸디나비아 민족들의 언어는 영어에 많이 스며들었다. 지금 영어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단어 중 하나인 ‘take(취하다)’는 스칸디나비아 언어에서 흘러들어온 것. 이 때문에 독일어 계열로 ‘take’의 뜻을 가진 옛 영어 동사 ‘niman’은 소멸됐다. 피부(skin) 셔츠(shirts) 케이크(cake) 알(egg) 동료(fellow) 등도 스칸디나비아에서 물려받은 어휘다.

미국 프린스턴대 비교문학 전공 교수인 저자는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아랍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라틴어 프로방스어 등을 읽을 수 있는 언어 실력의 소유자. 그 같은 언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이 책에서 21개의 철학적 단상으로 묶였다.

언어의 흥망성쇠를 다룬 이 책은 소재 자체가 매우 다양하다. 아기의 옹알이, 아무도 발음할 수 없는 히브리어의 철자 알레프에 관한 전설, 호흡을 지시하는 묵음인 ‘H’의 부침, 혀가 없이 조그만 돌기만으로 말하는 소녀, 11세기 시리아 시인 알 마아리의 편지 ‘용서의 편지’ 등 흔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뤘다.

이 책은 별도의 결론이 없다. 저자의 철학적 사변은 성경과 탈무드 속 바벨탑의 전설에서 끝을 맺으며 여운을 남긴다. “바벨탑은 파괴된 채로 계속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어의 끝없는 혼란 속에 내던져진 채, 끝내 그 사실을 망각한 채로, 바벨탑 속에 머무르는 셈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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