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4개 시장의 이야기가 담긴 ‘시장이 두근두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6일 2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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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돌뱅이도 아닌데 전국의 시장을 돌아다니는 20대 청년이 있다. 이희준 씨(27·동국대 회계학과)는 2년 전부터 볼펜과 수첩만 가지고 1372개 전통시장 중 435개를 누볐다. 기자와 인터뷰한 16일에도 그는 서울 구로구 남구로시장에 다녀 온 길이었다.

“남구로시장은 ‘칠공주 떡볶이 할머니’가 유명하거든요. 같은 상점에서 할머니 일곱 분이 각자 철판을 갖고 장사를 하세요. 재료는 같은데 손맛이 다 달라서 단골도 다 따로 있어요.”
이 씨는 2013년 7월 친구들과 사회적 벤처 회사를 만들고 전통시장에서 구매한 정량의 식재료와 요리법을 집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했었다. 그는 지난해 8월 이 사업을 접었다. 소비자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소규모로 식재료를 구매하다보니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목표를 이루기에는 진척이 더딘 게 이유였다.

그는 스스로를 ‘전통시장 도슨트(해설사)’로 부른다.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젊은이들이 찾아와야 하고 그러려면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것. 이 씨는 시장의 통닭집과 닭강정만 해도 인천의 신포 국제시장, 부산 부평 깡통시장, 수원 팔달문 통닭거리, 광주 양동시장, 서울 영천시장 등에 흥미로운 내력의 상점들이 많은데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것이 안타깝고 했다.
“1372개 시장마다 한명씩 1372명의 젊은 도슨트가 그 시장과 상인, 상점에 얽힌 이야기를 말해줄 수 있다면 젊은이들의 발길도 자연스럽게 돌릴 수 있지 않을까요?”

시장마다 다른 색깔의 매력이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시장은 광주광역시 동구의 대인시장이라고 한다. 이 시장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여는 야시장도 마음에 들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
“‘해뜨는 식당’이라고 1000원짜리 백반집이 있어요. 밥값이 부담스러운 지역민들이 싼 값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인데, 주인이 돌아가셨거든요. 그 뒤에 시장 상인회가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어요. 주민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게 우리 전통시장의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지방 시장에 한번 답사를 가면 2, 3일은 걸린다. 답사 비용은 벤처를 운영하며 벌어놓은 약간의 돈과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고 있다. 취업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이 불안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진짜 불안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누가 바라봐 주지도 않지만 거의 사명감으로 하고 있어요. 부모님이 원래 ‘이제 그만 취업해라’라고 하셨는데 이번에 낸 책을 보시더니 ‘네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라’고 하시더라고요.”

책에는 전국 44개 시장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 씨는 “전국의 전통시장을 기록한 책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수중에 돈은 없지만 책 제목처럼 두근거리는 삶을 살고 있어요. 바보같이 보일지 몰라도 행복합니다.”

조종엽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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