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과거 속에 추억은 어디 서 있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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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국립현대미술관 사진전 ‘우리가 알던 도시’-‘아키토피아’

‘아키토피아의 실험’전 출품작인 강홍구의 ‘드럼통’(2004년·위쪽 사진). 경기 파주출판도시가 세워질 무렵 길가에 버려진 드럼통 곁에 윗옷을 벗고 선 사내아이의 뒷모습을 촬영했다. 아래쪽 사진은 일본에 거주하며 원전 폭발 이후의 공간 이미지를 기록하고 있는 박진영의 ‘후쿠시마 아카이브-산요 선풍기’(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아키토피아의 실험’전 출품작인 강홍구의 ‘드럼통’(2004년·위쪽 사진). 경기 파주출판도시가 세워질 무렵 길가에 버려진 드럼통 곁에 윗옷을 벗고 선 사내아이의 뒷모습을 촬영했다. 아래쪽 사진은 일본에 거주하며 원전 폭발 이후의 공간 이미지를 기록하고 있는 박진영의 ‘후쿠시마 아카이브-산요 선풍기’(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자, 찍어요. 하나, 둘….”

찰칵. 그 소리와 함께 고착된 이미지는 프레임 속 저마다가 한순간 지어낸 최선의 표정이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모아 묶은 사진첩은 개별적 삶의 기록으로 대체 불가능한, 매우 제한적인 가치를 지닌다. 어느 날 사진 속 주인공이 현실에서 소멸했을 때, 폐허에 버려진 사진첩은 쓰레기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있을까. 10월 1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우리가 알던 도시: 강홍구 박진영 사진전’은 그것을 묻는다.

82점의 사진이 보여주는 건 누군가의 삶 또는 생활공간이다. 포착한 시점은 모두 과거다. 현재의 그곳은 대개 주인을 잃었거나 모습이 크게 변했다. 강홍구 작가(59)는 2000년대 초부터 서울 곳곳에서 벌어진 재개발 풍경을 추적했다. 도시 재개발에 의해 통째로 해체돼 지워질 일정을 통보받은 공간의 풍경은 결코 한가롭지 않다. 그의 사진에는 그 공간이 웅크려 품은 허탈한 긴장감을 최대한 ‘아름답지 않게’ 담아내려 한 기색이 역력하다.

“사진은 뻔뻔하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끔찍한 현실이 심미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잔인한 일은 없다. 빈집과 전쟁터와 폐허의 사진이 그렇다. 흉흉한 형상의 집을 촬영하고 인화해 색칠하는 과정에서 심미성이 생겼다. 현실과 심미성 사이에는 깊은 균열이 있다.”

박진영 작가(43)의 최근작 주제는 일본 후쿠시마다. 4년 전 원전 사고로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생활공간의 잔해를 찾아가 이미지 기록으로 남겼다. 공터에 덩그러니 남겨진 목마, 재로 뒤덮인 건물 골조 안에 앙상한 모습으로 멈춰 있는 선풍기의 모습이 처연하다.

강 씨가 소멸이 예고된 공간을 오래 맴돌았다면 박 씨가 찾아간 곳은 예고 없이 소멸한 공간이다. 전시실 한쪽에 박 씨는 후쿠시마 폐허에서 주워 온 사진첩과 액자를 펼쳐 놓았다. 생활이 소멸한 공간에 남은 생활의 기록이다. 공간과 사람이 사라진 곳에 사진이 남았다. 그것을 바라보는 생면부지 관람객은 ‘한 개인에게 제한된 가치’를 가졌던 이미지의 효용을 돌아본다.

9월 27일까지 맞은편 전시실에서 열리는 ‘아키토피아의 실험’전은 서울 세운상가, 경기 파주출판도시, 헤이리아트밸리, 경기 성남시 판교를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 건축의 행적을 살폈다. 산업사회의 유토피아라도 지어낼 듯했던 세운상가 청사진 도면에서 출발해 거대 공간에 대한 욕망이 사라진 판교 단독주택단지의 기묘한 아우성으로 끝맺는다. 전시의 골조로 삼은 매체는 공간의 흔적을 기록한 사진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온 이 땅의 건축적 현상을 보여주며 ‘감상’을 최대한 배제한 점에서 ‘우리가 알던 도시’전과 구별되는 동시에 이어진다. 신중히 고민해 골라낸 것이 틀림없는 벽면 텍스트가 여러 번 눈길을 붙든다.

“판교는 건축의 유토피아이자 무덤이다. 중산층과 건축가의 취향과 욕망이 만들어낸 ‘건축 전시장’이다. 언젠가 이 주택들이 헐릴 무렵, 이곳에는 따라야 할 문맥이 생겨나 있을까.”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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