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600년전 백제인, 폭 20m 포장도로 깔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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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토성서 왕복 2차로 발굴

9일 서울 송파구 몽촌토성 내 북문(北門)터 근처에서 백제시대 도로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속 도로는 폭이 약 20m에 달해 지금껏 발굴된 백제 도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밝혀졌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난해 몽촌토성에서 발견된 백제시대 도로는 폭이 약 20m에 이르는 ‘대형 포장도로’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지금까지 발굴된 백제 도로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것이다.

이와 함께 요즘 고속도로의 중앙분리대 역할을 하는 ‘중앙 도랑’을 갖추고, 회(灰)와 자갈을 섞어 표면을 포장한 사실도 새로 드러났다. 최근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가운데 초기 한성 백제시대(4∼5세기) 왕성(王城)의 위상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한성백제박물관은 올 3월부터 시작한 서울 송파구 몽촌토성 내 북문(北門)터에 대한 2차 발굴조사 결과 지난해 7월 발견된 백제 도로 2개가 폭이 15∼20m에 이르는 대형 포장도로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9일 밝혔다. 이 중 북문에 가까운 2번 도로는 너비 3.4m의 도랑을 가운데 두고 폭이 3.1∼3.6m인 노면 2개가 나란히 평행을 이루고 있다. 각 노면 양끝에는 배수로 역할을 하는 폭 4∼5m의 측구(側溝)가 50cm 깊이로 파여 있다.

박중균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측구 2개와 중앙 도랑, 노면 2개를 포함한 2번 도로의 전체 폭은 약 20m에 이른다”며 “현재까지 확인된 이 도로의 길이만 35m가량 된다”고 밝혔다. 발굴팀은 이곳이 수레가 드나든 왕복 2차로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2번 도로에서 남동쪽으로 20m가량 떨어져 있는 1번 도로 역시 마찬가지로 중앙 도랑을 사이에 두고 2개의 노면과 측구가 나란히 배치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금까지 26m의 길이가 확인된 1번 도로의 폭도 최소 15m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규모가 더 크고 몽촌토성 북문과 맞닿아 있는 2번 도로가 왕경 대로(大路)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금의 광화문 세종대로를 연상하면 알기 쉽다.

흥미로운 것은 두 도로의 진행 방향이 몽촌토성의 옛 북문을 거쳐 이로부터 700m쯤 떨어져 있는 풍납토성으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고고학계에서는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이 백제시대 당시 각각 남성(南城)과 북성(北城)이었고 이 중 한 곳에 왕궁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인숙 한성백제박물관장은 “이번에 발굴된 백제시대 도로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아우르는 백제 왕도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역사적인 유적”이라고 말했다.

도로 노면의 경우 자갈과 점토를 섞어 다진 뒤 시루떡처럼 쌓아올리고 표면을 회와 자갈을 혼합해 포장한 사실도 눈길을 끈다. 이렇게 하면 도로의 내구성이 한층 강화된다. 실제로 인근의 통일신라시대 도로에 숱한 수레바퀴 흔적이 남아 있는 반면 백제 도로에서는 지금까지 단 하나의 수레바퀴 흔적만 발견됐다. 그만큼 도로 표면이 단단해 지반이 쉽게 내려앉지 않았다는 얘기다.

회를 사용한 것과 관련해 학계 일각에서는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백제의 ‘증토축성법(蒸土築城法)’이 도로에 응용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증토축성법은 석회를 물에 개어 마치 시멘트처럼 사용하는 축성 방식이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개로왕이 이 방식으로 수도 한성의 성곽을 쌓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박순발 충남대 교수(고고학)는 “이번에 발견된 백제시대 대형 포장도로는 규모로 볼 때 백제 왕성의 중심 도로였음이 틀림없다”며 “왕궁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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