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얕은 재미’일까, 아니면 ‘우주의 콘텐츠 도둑질’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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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장 콘텐츠 큐레이션 업체 ‘피키캐스트’ 성공의 이면

《 급성장하고 있는 국내 콘텐츠 큐레이션 업체 ‘피키캐스트’의 슬로건은 ‘우주의 얕은 재미’다. 하지만 피키캐스트가 남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가져다가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월 모바일 앱이 출시된 피키캐스트는 ‘먹어본 사람만 안다는 초밥계 숨겨진 다크호스’ ‘놓치면 후회하는 오늘의 짤(우스운 사진이나 동영상)’ ‘내일의 별자리 운세’ 등 재미 위주의 신변잡기적 콘텐츠로 젊은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피키캐스트 모바일 앱은 누적 다운로드가 지난달 900만 건을 돌파했다. 중복을 제외한 월간 순 피키캐스트 이용자 수는 올 3월 300만 명(코리안클릭 조사)에 이르렀다. 게시물별 조회 수도 수만∼수십만 건 수준으로 웬만한 언론사 닷컴에 필적한다. 》

피키캐스트의 동영상 제작팀 피키픽처스가 만든 ‘여자가 남탕에 간다면’(아래쪽 사진)은 tvN이 방영했던 ‘롤러코스터―남녀생활탐구백서 2화 공중목욕탕 편’과 구성이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두 동영상 속 출연자가 샴푸 한 머리로 각종 헤어스타일을 만들며 놀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 캡처
피키캐스트의 동영상 제작팀 피키픽처스가 만든 ‘여자가 남탕에 간다면’(아래쪽 사진)은 tvN이 방영했던 ‘롤러코스터―남녀생활탐구백서 2화 공중목욕탕 편’과 구성이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두 동영상 속 출연자가 샴푸 한 머리로 각종 헤어스타일을 만들며 놀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 캡처
○ 이미지를 참조? 무단 도용?

그러나 피키캐스트가 콘텐츠를 골라서 보여주는(큐레이팅) 방식은 사실 콘텐츠 도둑질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콘텐츠 업체 대표는 “큐레이션은 양질의 정보를 선별해내는 서비스를 뜻하는데, 피키캐스트는 트래픽이 잘 나오는 콘텐츠를 불펌(사용 허락을 받지 않고 콘텐츠를 불법적으로 퍼오는 행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17∼22일 피키캐스트 게시글 중 20개에 사용된 사진, ‘움짤’(움직이는 짧은 동영상) 등 383개 이미지의 출처를 분석해 보니 별도의 사용 허락을 받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232개(60.6%)였다. 피키캐스트는 이들 이미지의 출처를 표기할 때 ‘이미지 참조 ○○○’라고 표기하지만 실제로는 원이미지를 다운로드해 그대로 올리고 있다.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 대표는 “피키캐스트는 ‘우주의 콘텐츠를 베끼고, 교도소 담장을 오고 가면서’ 성장해 왔다”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자 불펌을 적발하거나 항의하기 어려운 해외 매체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피키캐스트가 사용한 이미지는 미국 지피닷컴(giphy.com)이나 레딧닷컴(reddit.com) 등 해외 인터넷 사이트가 많다.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 블로그 서비스인 텀블러 등에 올라온 콘텐츠 중 일부를 잘라내 올린 것도 상당했다.

불펌은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누리꾼들이 놀이 삼아 하지만 피키캐스트는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소속 에디터들이 직접 올린다는 점에서 다르다. 피키캐스트는 불펌으로 트래픽을 확보한 뒤 네이티브 광고를 팔아 수익을 낸다.

피키캐스트 측은 “사업 초기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자체 제작을 늘리는 한편 최대한 원출처를 찾아 제휴나 보상을 하고 있다”며 “원출처를 찾을 수 없는 콘텐츠 사용에 대해 사회적으로 보상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 중이며, 그를 위해 자문위원단을 구성했다”고 해명했다.

○ 저작권 문제 해결하고 있어?

피키캐스트는 올해 ‘피키픽처스’를 설립해 일부 동영상 콘텐츠를 직접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일부 영상은 기존 방송 프로그램과 아이디어나 연출이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키픽처스가 만든 ‘여자가 남탕에 간다면’ 동영상은 출연자의 성별만 바뀌었을 뿐 tvN이 방영했던 ‘롤러코스터―남녀생활탐구백서 2화 공중목욕탕 편’과 유사했다. 이에 대해 피키캐스트 측은 “‘롤코’를 보고 만든 것은 아니며, 성별 역할 체인지에 착안해 일반적으로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장윤석 피키캐스트 대표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미 자체 제작 콘텐츠가 절반을 넘었다”고 말했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방을 통해 창작할 수도 있지만 ‘플러스알파(+α)’를 통해 없던 것을 가미하면서 자기화해야 진정한 창작”이라며 “피키캐스트처럼 콘텐츠에 질적 변화를 주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퇴행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저작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하자 최근 피키캐스트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저작권 침해 콘텐츠를 슬쩍 삭제하기도 했다. 한때 피키캐스트는 일본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매 장면을 그대로 캡처해 드라마 내용을 보여준 시리즈물을 올려 인기를 끌었다. 이 게시물은 지금은 검색되지 않는다.

○ 플랫폼화 성공하나?


피키캐스트에는 18일 ‘인터넷에 퍼지고 있는 틀린 메르스 예방법 3가지’가 올라왔다. 연합뉴스TV와 협약을 맺고 리포트를 전재한 것. 연합뉴스TV 관계자는 “시청층을 확대하기 위해 콘텐츠 사용을 허락했다”고 말했다.

피키캐스트는 최근 뉴스통신사, 언론사 등과도 제휴해 생활 밀착형 뉴스 콘텐츠를 올리고 있다. 엔터테인먼트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뉴스로도 일부 영역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피키캐스트는 “콘텐츠가 유통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게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 워스트’ 등을 운영하고 있는 이준행 씨는 “불펌 서비스가 호응을 얻고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저작권 기반의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며 “창작자가 아니라 창작물을 베낀 사람들이 돈을 벌게 되면 콘텐츠 업계는 공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 콘텐츠 ‘공정 이용’이란? ▼

저작자 이익 부당하게 침해 않을 땐 보도 비평 교육 등 저작물 이용가능
저작권자가 있는 창작물도 특정한 경우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이를 ‘공정 이용(fair use)’이라고 하는데 국내 현행 저작권법에도 도입돼 있다.
저작권법은 저작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경우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해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침해 여부 판단의 기준은 △영리성, 비영리성 등 이용의 목적과 성격 △저작물의 종류와 용도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 △저작물의 이용이 그 저작물의 현재 및 잠재 시장에서의 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이다.

사용목적이 상업적인지는 특히 중요하다. 법원은 2008년 SBS의 한 예능 프로그램이 영화 ‘대괴수 용가리’의 저작권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3분 가까이 영상을 사용한 것에 대해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SBS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유료로 판매된 점 등을 영리적 이용이라고 본 것이다.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 대표는 “누리꾼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캡처해 새로운 콘텍스트를 만드는 것 등은 공정 이용의 범위 내에서 좀 더 폭넓게 허락돼야 하지만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 창작한 것을 베껴서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 콘텐츠 큐레이션 ::

미술관 큐레이터처럼 콘텐츠를 골라서 보여주는 서비스.

:: 네이티브 광고 ::

본 콘텐츠와 비슷한 형식으로 만든 광고. 본 콘텐츠와 분리된 배너 광고보다 사용자들의 관심을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콘텐츠#큐레이션#피키캐스트#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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