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발레 테크닉으로 보여준 ‘깜짝 안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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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연 ‘그램 머피의 지젤’

유니버설발레단이 13일 세계 초연한 ‘그램 머피의 지젤’. 1막에서 지젤이 크리스털을 든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과 군무를 추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유니버설발레단이 13일 세계 초연한 ‘그램 머피의 지젤’. 1막에서 지젤이 크리스털을 든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과 군무를 추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한국적 소재인 ‘심청’과 ‘춘향’을 성공적인 창작발레로 정착시킨 유니버설발레단이 전혀 새로운 ‘지젤’을 세계 초연했다. 안무를 맡은 호주의 그램(그레임) 머피는 ‘호두까기 인형’의 어린 클라라를 호주에 정착한 러시아 황실 발레단 출신의 할머니로 바꾼다거나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 공주에게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미지를 투영하는 등의 작업으로 ‘발레계의 탁월한 이야기꾼’이 된 유명 안무가다.

그런데 머피의 방식이 바뀌었다. 위 두 작품에서는 원곡을 일부 순서만 바꿔 사용한 반면 이번에는 영화음악가 크리스토퍼 고든의 새 음악을 사용했다. 줄거리도 예상보다 변화가 적어서 원래 캐릭터를 그대로 등장시키되 왜 악령을 이끄는 미르트가 원한을 품게 되었는지를 지젤 부모와의 삼각관계로 제시했고, 악령을 물리치는 힘은 여제사장인 지젤의 모친이 지닌 크리스털에서 나온 것으로 했다.

‘그램 머피의 지젤’ 2막에서 처녀귀신이 된 지젤이 연인 알브레히트와 포옹하고 있다.
‘그램 머피의 지젤’ 2막에서 처녀귀신이 된 지젤이 연인 알브레히트와 포옹하고 있다.
쉽고 효과적으로 갈 수 있는 길을 괜히 어렵게 돌았다는 느낌이다. 새 음악은 난해하지 않고 극적 상황과 잘 부합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지젤의 원곡이 지닌 1막의 화사한 풍광과 2막 숲 속 묘지에서 펼쳐지는 낭만주의 특유의 ‘아름다운 기괴함’이 그리웠다. 음악이 바뀌면서 왜 여기 담긴 이야기가 지젤인가 하는 필연성도 떨어졌다. 원래의 지젤에서는 1막보다 2막이 훨씬 중요하고 감동적인데 머피가 오히려 1막 이야기를 늘리고 2막은 줄인 것도 극적 불균형을 가져왔다. 더욱이 죽음을 초월한 사랑으로 연인 알브레히트를 구해내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털의 힘으로 이겨낸다는 것도 ‘인디애나 존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따라서 이번 신작은 이야기꾼으로 머피의 솜씨가 아니라 원작의 포즈를 날카롭게 재구성하고 고전 발레 테크닉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음을 입증한 안무에 점수를 주어야 할 것 같다. 악의 화신으로 캐릭터를 강화했음에도 카리스마를 느낄 수 없었던 미르트의 춤에 대해서는 아쉽지만 말이다. 머피가 호주에서 데려온 무대와 의상, 조명 디자인팀은 신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현대에 통용될 만한 호사스러운 볼거리를 제공했으며 고든의 음악도 그 자체로는 충분히 높은 수준이었다.

아쉬움도 남지만 유니버설발레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꼭 거쳐야 할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제목은 안무가 이름만 붙인 ‘그램 머피의 지젤’이 아니라 ‘지젤 이야기’나 ‘또 다른 지젤’처럼 살짝 바꾸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유형종 음악·무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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