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주요 유적 모두 내손으로…” 최반장의 생애 마지막 발굴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7일 15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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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백, 아니 천년 이상의 신비를 간직한 유물이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과의 싸움이 필요하다. 학자가 아닌 현장 발굴팀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이들의 땀이 없다면 발굴 자체가 불가능하다. 고분과 수중에서 발굴 현장을 지켜온 이들의 얘기를 담았다.

○육상 발굴 현역 최고참 ‘최 반장’

12일 경북 경주시 월성 발굴현장. 칠순을 넘긴 백발의 노인이 꽃삽으로 조심스레 땅을 팠다. 불과 5분 정도 지났을까. 돌 사이에서 잿빛 덩어리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노인은 한번 스윽 훑어보고는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삼국시대 것은 아니고 통일신라 기와구먼.”

이 사람은 고고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월성 현장에 있는 어떤 학예연구사보다 훨씬 오랫동안 신라유물을 만졌다. 천마총을 비롯해 황남대총, 안압지, 황룡사터를 거쳐 월성에 이르기까지 근 50년 동안 경주의 발굴현장을 지킨 작업반장 최태환 씨(73).

작업반장은 현장 인부들을 통솔해 유구(遺構·옛 건축의 구조를 알 수 있는 흔적)가 묻힌 흙을 걷어내고 유물을 출토하는 임무를 맡는다. 유구와 유물을 훼손하지 않고 발굴하는 작업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의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건 경부고속도로를 내면서 정부가 실시한 1967년 경주 방내리 고분군 발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50년 발굴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험으로 그는 주저 없이 1975년 안압지 발굴을 꼽았다. 당시 연못 밑 진흙층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통나무배를 그가 직접 파냈다. 그의 역할은 유물 출토에서 그치지 않고 통나무배의 보존처리 작업까지 이어졌다. “그때만 해도 보존과학을 전공한 분들이 별로 없었어요. 서울에서 경주까지 출장을 오는 것도 한두 번이지. 결국 내가 약품처리 방법을 전문가한테 직접 배웠습니다. 한 5년 동안 경주박물관 지하창고에 수시로 들어가서 통나무배가 잠긴 수조에 페놀 같은 화학약품을 섞어주고 그랬어요.”

ekdt 안압지에서는 통나무배를 비롯해 목간(木簡), 14면체 주사위 주령구(酒令具), 목제 남근(木製 男根) 등 신라 유물들이 쏟아졌다. 그는 “다양한 유물이 많이 나와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다”며 “10년을 해도 될 발굴인데 당시 여건상 1년 반 만에 끝내서 지금도 아쉽다”고 했다.

그에게 이번 월성 발굴은 특별하다. 사실상 그의 마지막 발굴이기 때문이다. 월성 발굴을 주축으로 한 ‘신라왕경 복원 정비사업’은 2025년까지 잡혀있는데 그때는 이미 팔순을 훌쩍 넘게 된다. 최 반장은 “경주시내 주요 유적들을 모두 내 손으로 발굴해봤다는 데 한없는 자부심을 느낀다”며 “월성 발굴까지 해봤으니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수중 발굴 산 역사 ‘박 팀장’


지난달 29일 충남 태안군 마도(馬島) 앞 바다. 보트를 타고 10분쯤 이동하자 노란색 부표가 파도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마도 5호선’으로 추정되는 고선박 발굴현장이다. 마도 5호선은 올 3월 3차원(3D) 지층탐사 때 우연히 발견됐는데, 선체를 뒤덮고 있는 진흙을 잠수부들이 삽으로 파내고 있었다. 이들은 산소를 공급해주는 노란색 케이블을 연결한 채 약 50분 동안 작업을 이어갔다. 수중 발굴은 수압과 조류 때문에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이곳은 수심이 얕지만 지층이 워낙 단단해 잠수부들이 작업에 애를 먹고 있었다.

잠수부들 사이로 일일이 작업지시를 하고 있는 박용기 잠수팀장(55)을 배 위에서 만났다. 해병대 출신으로 32년의 잠수경력을 갖고 있는 박 팀장은 본격적인 첫 수중 발굴인 2002년 군산 비안도 발굴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수중 발굴의 ‘산 역사’인 셈이다.

비안도 발굴 당시만 해도 수중 발굴 전용선박이 없어 어선(통통배)을 타고 현장에 접근했다.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면 조그마한 배가 크게 흔들려 위험했다. 박 팀장은 “납으로 된 12㎏짜리 벨트를 허리에 매다 넘어져서 갈비뼈가 부러진 적도 있다”며 “지금은 발굴여건이 좋아져 과거보다 안전해졌다”고 했다.

발굴 보수가 적어 한동안 조개잡이를 겸하다가 한때 그만두려고도 했지만, 그는 결국 이 일을 접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박 팀장은 “물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도자기를 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체력이 다할 때까지 수중 발굴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주·태안=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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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환 작업반장이 경북 경주시 월성 발굴 현장에서 신라시대 기와를 꽃삽으로 파내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최태환 작업반장이 경북 경주시 월성 발굴 현장에서 신라시대 기와를 꽃삽으로 파내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최태환 작업반장. 문화재청 제공

최태환 작업반장. 문화재청 제공

최태환 작업반장이 경북 경주시 월성 발굴 현장에서 신라시대 기와를 꽃삽으로 파내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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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마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고선박 발굴을 위해 박용기 잠수팀장이 장비를 갖춰 입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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