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누구에게나 발생하는 현실…법의 잣대로 ‘죽음 직시하기’를 말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3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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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가지 죽음/이준일 지음/372쪽·1만5800원·지식프레임

그는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인 서류철을 던졌다. 180명의 유언장과 사망신고서였다.

“죽음에 관한 수업을 개설했어요, 학생들에게 출석 대신 자신의 사망신고서와 유언장을 써서 제출하라고 했죠. 사망신고서, 유언장을 써봐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할 것 같았습니다.”

11일 만난 고려대 이준일 법학전문대학원 교수(49)의 말이다. 그는 최근 자연사, 뇌사, 안락사, 병사, 자살, 사회적 타살, 변사, 살인, 의문사, 사형 등 13가지 죽음의 유형을 토대로 죽음과 관련된 법과 제도, 사건과 판례를 활용해 죽음을 탐구하는 책을 냈다. 책의 부제 는 ‘어느 법학자의 죽음에 관한 사유’. 왜 법의 관점에서 죽음을 연구했을까?

“죽음을 키워드로 자료를 검색해보니 1000권이 넘는 책이 검색되더군요. 법과 관련된 책은 없었어요. ‘왜 그럴까’ 고민했죠. 사람들이 죽음을 너무 철학적, 종교적으로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은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에요. 자연사는 5명 중 1명에 불과해요. 나머지는 외부적 요인으로 죽습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보세요. 허술한 정부의 제도, 부패한 기업이 연루된 죽음이죠.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겁니다.”

죽음이 사회적 차원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의미다. 오늘날 죽음 중 상당수는 범죄, 사고, 빈곤, 제도 미비, 비리 등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법으로 보장받아야 할 ‘사회적 사건’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병사(病死)는 개인의 죽음처럼 보이지만 의료, 복지제도와 연관이 있습니다. 자살은 우울증이 원인이라고 하는데 ‘왜 우울증이 생겼나’를 따져보면 사회구조와 연관됩니다. 모든 죽음에 사회적 맥락이 있는 만큼 법과 제도가 개입돼야 하는 거죠. 우리나라는 검시제도가 미흡하고 안락사 등 죽음에 대한 법제가 불충분해요. 그러다보니 억울한 죽음이 많고 죽음을 공포,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원인이 되는 겁니다.”

국내에는 안락사를 규율하는 법 자체가 없다, 범죄로 사망하는 경우 범죄피해자 보호법에 따라 유족 구조금을 받을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정도로 죽음과 법을 연관지어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발생하는 현실이에요. 철학, 종교와 달리 법은 어떤 현실적인 답, 즉 행동의 기준을 줍니다. 실제적이기 때문에 논의도 가능해지죠. 안락사 문제가 생기면 매번 판례를 통해 판결이 납니다. 생명연장이 의미 없는 환자가 의사의 도움으로 약을 처방받아죽으면 자살방조죄로만 다뤄집니다. 죽음에 대한 논의가 초보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거죠,”

이 교수는 “죽음을 꺼내놓고 이야기해야 답이 있다”며 “자꾸 숨기고 관련법을 안 만드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죽음에 대해 열정적으로 답하던 그는 삶을 이야기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자살하려는 청춘이 많죠. 그들을 탓하기보다는 죽음으로 인해 얻을 고통으로부터의 해방감과 살아서 누려야 할 많은 것들을 비교해보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학생들이 사망신고서를 쓰면서 나이, 최종학력, 가족관계란 등을 기입하면서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하더군요. 죽음은 ‘삶에 대한 고민’인거에요. 학생들이 쓴 사망신고서, 유언장을 10년 후 돌려줄 겁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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