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세상 다리’처럼 변치않는 관객에 황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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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가펑클 13일 첫 내한공연

12일 만난 미국 가수 아트 가펑클. ‘사이먼 앤드 가펑클’ CD를 보여주자 “스물아홉 때다. 사진 참 잘 나왔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12일 만난 미국 가수 아트 가펑클. ‘사이먼 앤드 가펑클’ CD를 보여주자 “스물아홉 때다. 사진 참 잘 나왔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한국이든, 캘리포니아든, 파리든, 세계 어디서도 제 노래를 감동을 느끼며 들어줄 관객이 있다는 것. 황홀한 일이죠.”

1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롯데호텔월드 스위트룸에서 만난 아트 가펑클(74)은 셰익스피어 연극 속 그리스 왕 같았다. 만화 캐릭터처럼 뽀글뽀글 풍성했던 머리카락은 나이 탓에 이마 뒤쪽으로 밀려났지만, 과장된 제스처와 연극적인 말투에 대단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는 폴 사이먼과 함께 포크 듀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을 결성해 1960, 70년대 별 같은 명곡들을 발표했다. ‘스카버러 페어’ ‘더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더 복서’ ‘엘 콘도르 파사’ ‘미시스 로빈슨’.

가펑클은 14일 오후 6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잠실체육관에서 콘서트를 연다.(9만9000∼17만6000원·1544-1555) 2000년 아시아-유럽 정상회의 기간 열린 서울 평화콘서트 무대에서 두 곡을 불렀을 뿐, 제대로 된 내한 공연은 처음이다. “그간 한국에 못 들러 죄송합니다. 콘서트의 절반은 ‘사이먼 앤드 가펑클’ 시절 노래, 나머지는 솔로 시절 곡과 전에 부른 적 없는 노래들로 꾸밀 작정이에요.”

가펑클은 1970년 ‘사이먼 앤드 가펑클’ 해체 뒤 2007년까지 10장의 솔로앨범을 냈다. 2010년 심한 성대결절을 겪었다. 가수 생활은 끝난 듯했다. “처음엔 샤워할 때만 남몰래 노래했어요. 가장 좋은 친구는 욕실이었죠. 하지만 성치 않은 목으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부끄러움, 두려움과 결국 친구가 되기로 했어요. 많은 걸 배웠죠. 지금은 회복돼 전성기 때와 같은 소리를 낼 수 있어요.”

사이먼과 가펑클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2009년 일본, 호주, 뉴질랜드 순회공연을 함께한 뒤 둘은 무대를 공유하지 않았다. “현재로선 (재결합) 계획이 없어요. 하지만….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은 인간으로서, 뮤지션으로서 함께 성장했습니다. 불씨는 살아있어요. 폴은 코네티컷, 전 뉴욕에 사는데 가끔 연락해요.”

가펑클의 섬세한 고음은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음악에 꿈결 같은 분위기를 드리웠다. 비단결 같은 그의 보컬은 마지막 듀오 앨범에 실린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1970년)에서 이별을 예감한 듯 활화산처럼 폭발했고 음악사에 명장면을 남겼다. 가펑클도 이 곡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당시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녹음하는 5분 동안 엄청난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다른 노래들과는 다른…. 완성된 곡을 커다란 스피커로 듣는데, ‘역사적인 노래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어요.”

1960년대 말은 역사적인 싱어송라이터들의 격전장이었고 가펑클은 경쟁이 대단했다고 털어놨다. “가장 신경 쓰인 건 ‘비틀스’와 ‘마마스 앤드 파파스’였어요. 로스앤젤레스 공연이 잡히면 마마스 앤드 파파스의 스케줄부터 체크할 정도였으니까요.”

생각에 잠긴 듯 천장을 올려다보던 가펑클이 또다시 왕과 같은 큰 손짓으로 말을 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치 않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건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노래를 할 때마다 저 위에서 커다란 힘이 내려와서, 제 몸을 통과해, 객석으로 퍼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가 있을 곳은 무대예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아트 가펑클#내한공연#험한 세상 다리#잠실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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