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작가 하퍼 리, 은둔 55년만에 발표한 신작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4일 15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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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발표한 첫 소설 ‘앵무새 죽이기’(정확히는 ‘흉내지빠귀 죽이기’)를 쓴 미국소설가 하퍼 리(89)는 이후 단 한편의 소설도 발표하지 않고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으며 은둔해왔다. 오직 몇 편의 에세이만 발표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출세작 ‘호밀밭의 파수꾼(1951)’을 발표한 뒤 죽을 때까지 칩거하며 드문드문 단편소설만 발표했던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1919¤2010)에 비견돼 왔다. ‘여자 샐리저’라 할 그가 올해 7월 14일 새로운 소설 ‘가서 파수꾼을 세워라’(Go Set a Watchman)를 출간한다고 그와 이름이 같은 미국의 하퍼출판사가 3일 발표했다. 55년 만에 발표되는 그의 두 번째 소설이다.

하퍼출판사에 따르면 ‘가서 파수꾼을 세워라’는 흉내지빠귀 죽이기 이후 20년 뒤의 속편이지만 그보다 먼저 쓰인 작품이다. 리가 1950년대에 쓴 이 소설을 출판사에 보여주자 편집자가 여주인공 스카우트의 어린시절 회상장면만 별도로 작품화할 것을 제안해 흉내지빠귀 죽이기가 탄생했다. 리는 구약성서 이사야서 21장에 나오는 구절에서 제목을 딴 이 소설의 원고를 분실한 것으로 알고 있다가 지난해 가을 발견했다고 한다.

흉내지빠귀 죽이기는 1930년대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의 메이컴이란 가상의 마을을 무대로 초등학교 여학생(스카우트)의 시각에서 흑백차별의 모순을 형상화했다. 처녀작임에도 이례적으로 1961년 퓰리처상 수상작이 됐고 1962년엔 그레고리 펙이 스카우트의 아버지이자 마을사람들의 편견에 맞서 억울한 누명을 쓴 흑인 젊은이를 변호하는 애티커스 핀치 역으로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 제작됐다. 펙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리는 1966년 불혹의 나이에 미국예술원 회원이 됐다. 원작 소설은 40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적으로 4000만 부 이상이 팔렸고 1999년 미국 잡지 라이브러리 저널이 도서관 사서들 상대로 한 투표에서 ‘20세기 최고의 소설’ 1위에 뽑히기도 했다.

하퍼가 다른 소설을 발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2011년 그의 지인인 토머스 레인 버츠 목사는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흉내지빠귀 죽이기 발표로 겪은 유명세를 다시 겪고 싶지 않았고 둘째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그 소설 안에 다 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퍼는 2007년 대통령 자유의 메달 수상식과 2011년 국가예술훈장 수상식에서만 가끔 모습을 드러냈다는데 2007년 한 시상식에선 “바보가 되느니 침묵을 지키는 게 낫다”라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사생활과 관련해 알려진 것은 흉내지빠귀 죽이기의 내용이 변호사 아버지를 뒀던 그 자신의 경험담이 상당 부분 녹아있다는 것이다. 소설 속 스카우터의 친구 딜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극작가 트루먼 카포티(1924~1984)가 모델로,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죽마고우였다. 리는 카포티의 대표작 ‘냉혈한’(1966년)의 7년 간 취재와 집필을 돕기도 했다. 리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말년엔 누이이자 법정대리인이었던 앨리스와 함께 지냈다. 앨리스가 지난해 먼저 숨진데다 2007년 뇌졸중을 겪은 리는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상태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55년간 지켜온 침묵을 깬 것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하퍼 리의 컴백엔 영화 ‘헝거 게임’ 3부작의 히트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엔 ‘모킹 제이’라는 가상의 새가 나온다. 여주인공 캣니스를 상징하는 이 새는 리의 소설 속 흉내지빠귀(모킹 버드)와 어치(제이)의 유전자조합의 산물이다. 흉내지빠귀는 미주대륙에서만 서식하는 새로 다른 동물의 소리 흉내내기의 귀재다. 이를 국내 번역하면서 앵무새로 바꾼 것인데 흉내지빠귀는 참새목, 앵무새는 앵무목에 속한 전혀 다른 새다. 흉내지빠귀 죽이기란 제목은 “사람에게 해로울 게 하나도 없는 흉내지빠귀 같은 새를 죽이지 말라”는 애티커스의 말에서 따온 것으로 미국사회의 흑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비판한 것이다. 헝거 게임 속 모킹 제이 역시 정치사회적 불만을 잠재우려 가난한 사람들만 죽음의 희생양 삼는 미래국가의 차별적 폭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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