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비단으로 수놓은 우리 강산일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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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문화전 3부 ‘진경산수화’전
겸재-단원 등 대가의 작품 84점… 수백년 세월 건너뛰어 눈앞으로

겸재 정선이 70대 중반에 가로 80cm, 세로 28cm 크기의 부채에 그린 수묵화 ‘금강내산(金剛內山)’. 바위봉우리의 지루한 반복을 피하기 위해 오른쪽 혈망봉(穴望峯)을 주봉인 비로봉과 엇비슷하게 확대해 그렸다. 간송C&D 제공
겸재 정선이 70대 중반에 가로 80cm, 세로 28cm 크기의 부채에 그린 수묵화 ‘금강내산(金剛內山)’. 바위봉우리의 지루한 반복을 피하기 위해 오른쪽 혈망봉(穴望峯)을 주봉인 비로봉과 엇비슷하게 확대해 그렸다. 간송C&D 제공
금수강산(錦繡江山)은 익숙하지만 실감하기 어려운 단어다. 내년 5월 10일까지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간송문화전 3부: 진경산수화-우리 강산, 우리 그림’의 작품 84점은 ‘비단으로 수놓았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던 산천이 이 땅에 실재했음을 증명한다.

장중한 절경만 이어놓은 건 아니다. 전시의 고갱이인 겸재 정선 그림 몇몇의 대상 공간을 보면 ‘여기를 그려 작품이 될까’ 싶다. 서울 강서구 양천로 일대, 광진구 아차산 부근, 마포구 양화대교 주변. 각각 ‘이수정(二水亭)’, ‘광진(廣津)’, ‘양화환도(楊花喚渡)’의 배경이다.

이덕연 이덕형 형제가 벼슬에서 물러나 노년을 보내려고 지은 정자 ‘이수정’이 있던 곳에는 이제 아파트 숲이 빽빽하다. 나룻배 두 척이 손님을 기다리던 광나루는 광진교, 천호대교, 지하철 5호선의 교차점이 됐다. 양화나루의 높다랗던 선유봉은 일제강점기 채석장으로 쓰이면서 사라졌다. 설명 없이 들여다봐서는 300여 년 간극을 뛰어넘을 도리가 없다.

겸재가 앞장서 추구한 진경(眞景)의 무게중심은 어디에 있었을까. ‘양화환도’는 중학교 미술교과서에서 본 국보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에서 찾을 수 없던 그의 소박한 인간적 시선을 느끼게 한다. 그림의 방점은 지명의 유래가 된 흐드러진 버들꽃도, 서울 주변 명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백사장도 아니다. 고적하게 흐르는 너른 강줄기 한가운데 삿대 붙든 사공이 쪼그려 앉아 느릿느릿 배를 움직인다. 선유봉 아래 말 타고 선 양반 손님은 슬며시 갓을 젖혀 배의 움직임을 가늠한다. 그 앞 물가에 다가선 몸종 아이는 부산하게 팔을 휘저어 사공을 재촉한다. 가로 29cm, 세로 23cm 화폭에 찍힌 인물의 크기는 그야말로 깨알 같다. 하지만 그곳의 ‘진짜 풍경’을 전하는 에너지는 그들의 명료한 움직임이 붙들고 있다.

단원 김홍도의 ‘구룡연(九龍淵)’. 그림 위에 “못 속 아홉 용이 산길 오르기 두려워하는 사람을 비웃을까 걱정스럽다”고 썼다. 간송C&D 제공
단원 김홍도의 ‘구룡연(九龍淵)’. 그림 위에 “못 속 아홉 용이 산길 오르기 두려워하는 사람을 비웃을까 걱정스럽다”고 썼다. 간송C&D 제공
정조의 명을 받아 강원도 명승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산수화는 화폭 구석구석을 꼼꼼히 어루만진 듯, 겸재와 다른 결의 매력을 전한다. 고성군 신북면의 금강산 풍광을 담은 ‘구룡연(九龍淵)’. 비로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120m 절벽 아래로 쏟아지며 만든 거대한 연못으로 “구룡연을 보지 못했다면 금강산을 본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단원은 배경에 압도되지 않았다. “절벽에 오르니 미끄러지는 발이 걱정”이라는 글과 함께 그림 한구석에 허리 굽힌 채 낑낑대며 절벽 오르는 선비를 감춰놓았다. 이 움직임을 찾지 못했다면 단원의 ‘구룡연’을 봤다고 할 수 없다.

전시장 출구에 설치한 이이남 작가의 8분 길이 영상물 ‘2014 금강내산’을 놓치지 말길 권한다. 겸재의 ‘금강내산’을 밑그림 삼아 꽃 피고 물 흐르고 눈 내리는 금강 풍광을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쿵쾅쿵쾅 소리와 함께 문득 산자락 곳곳 건물이 솟더니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산이 어둠으로 번져 사라진다. 현재 이 땅의 서글픈 진경이다. 02-2153-0000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김홍도#간송문화전#진경산수화#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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