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잡지는 사회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사람들 세밀한 욕망까지 담겨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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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 펴낸 천정환 교수

잡지 ‘뿌리깊은 나무’ ‘보물섬’ ‘샘터’의 창간호 표지. 저자는 “잡지 창간사에는 시대의 담론과 정서, 욕망이 녹아 있다”고 강조한다. 마음산책 제공
잡지 ‘뿌리깊은 나무’ ‘보물섬’ ‘샘터’의 창간호 표지. 저자는 “잡지 창간사에는 시대의 담론과 정서, 욕망이 녹아 있다”고 강조한다. 마음산책 제공
천정환 교수
천정환 교수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볼 때와 유사한 알싸한 감성이 가슴을 채웠다. 그렇다고 이 책이 1990년대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1945년부터 2000년대까지의 국내 잡지의 창간사를 분석한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마음산책)을 접하면 누구든 한 번쯤 자신을 설레게 했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날 것이다. 저자인 성균관대 천정환 교수(46)를 5일 만났다.

“디지털 시대라 잡지가 쇠락하고 있죠. 하지만 잡지만큼 근현대사 100여 년을 잘 투영한 매체는 없습니다. 지식인이 만든 담론부터, 역사비평, 대중문화까지…. 당시 사람들의 삶과 앎, 나아가 시대의 세밀한 욕망과 취향까지 담아냅니다.”

저자는 3년 동안 박물관,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수백 종의 잡지를 발굴한 후 총 123편의 창간사를 분석했다. 1945년 12월 발간된 ‘백민’부터 ‘민성’, ‘개벽’, ‘사상’, ‘현대문학’, ‘뿌리깊은 나무’, ‘문학과 지성’, ‘말’, ‘키노’ 등 시대별 잡지 트렌드와 독자 반응, 시대 현실도 담았다.

“잡지를 창간하는 일은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퍼뜨리겠다는, 또 세상을 바꾸겠다는 욕망 과 연결됩니다. 1946∼1960년대 잡지 창간사에는 사회와 민족의 공기(公器)가 되겠다는 다짐이 있어요. 1963년 6월 창간된 ‘세대’ 창간사는 ‘획기적인 시대정신으로 세계사조의 광장에 나아가자’란 제목이 달렸을 정도죠. 1970년 ‘문학과 지성’의 창간사는 “‘이 시대의 병폐는 무엇인가’라는 의문문으로 시작됩니다.”

1950년대 잡지 창간사에는 전쟁의 아픔이, 1960년대에는 수난의 역사가, 1980년대에는 한국 언론의 척박한 환경이 거론된다. 2000년대에는 외환위기 이후 좌절을 다룬다. 저자는 시대의 키워드를 담은 창간사로 1940년대 ‘개벽’ 복간호와 ‘문학’, 1950년대 ‘사상계’, 1960년대 ‘청맥’, 1970년대 ‘뿌리깊은 나무’, 1980년대 ‘노래’, 1990년대 ‘상상’ 등을 꼽았다.

“심각한 잡지만 중요한 건 아니에요. ‘선데이서울’은 3류 잡지로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잡지를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답을 줬어요. 자본주의가 깊어가고 대중문화가 형성되던 1970년대의 사회 모습이 그대로 반영됩니다. 성(性)도 중요 콘텐츠로 다뤘는데 당시 남성 중심의 문화와 연관됩니다.”

책 속 창간사를 쓴 인물은 함석헌 김현 조세희 강만길 등 지식인과 문필가를 비롯해 조병옥 이후락 김재순 등 거물도 많다. 뜻밖의 인물도 있다.

“1982년 나온 만화잡지 ‘보물섬’ 기억하시죠? ‘아기공룡 둘리’가 실렸죠. 창간사를 찾아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썼더라고요. 직함도 없고 박근혜란 이름만 나와 있습니다.”

박 대통령 창간사에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어깨동무’를 창간할 때 어린이들을 위해 뜻하셨던 그 정성대로 보물섬도 어린이를 사랑하는 잡지가 되길 바란다”고 적혀 있다. 기자의 청소년 시절 중고생에게 충격을 줬던 야한 잡지 ‘핫윈드’의 창간사가 궁금했다.

“‘핫윈드’는 창간사가 없어서 뺐습니다. ‘월간 팝송’은 창간호를 못 찾아 아쉽더라고요. ‘창작과 비평’도 창간사가 없고 30쪽이 넘는 권두 논문이 실려 제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의 거울이 된 잡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스마트폰 콘텐츠, 블로그, 팟캐스트가 잡지를 대신한다고 봐요. 형태만 바뀌었을 뿐 잡지에 담긴 내용이나 소통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모색되는 셈이죠. 다만 예전처럼 ‘으�으�’ 하는 순수한 열정을 갖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잡지를 만드는 자세는 사라져 아쉽습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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