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택균]광주비엔날레 ‘홍성담 파문’ 예상 못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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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균·문화부
손택균·문화부
홍성담 작가의 ‘세월 오월’이 전하려 한 바는 명료했다. 다음 달 5일 개막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축제는 이 그림을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시작 전부터 파행을 겪고 있다. 지난주 공개된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프로젝트 참가작인 이 그림은 박근혜 대통령을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수정 요청을 받은 홍 작가는 박 대통령 대신 붉은 닭을 그렸다. 논란 끝에 광주시는 작품 전시를 유보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10일 특별프로젝트 책임큐레이터 직을 사퇴한 윤범모 가천대 회화과 교수는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차단당해 더없이 참담한 심정”이라며 “하지만 지나치게 직설적인 표현으로 애초의 기획 취지가 흐려진 것 또한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월 오월’은 광주시립미술관 외벽에 전시하려던 대형 걸개그림이다. 작가는 광주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 ‘좌초한 세월호를 끌어올리는 5·18민주화운동 시민군’의 이미지를 구현하려 했다고 한다. 사회의 오랜 적폐가 낳은 비극인 까닭에 그림 속엔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이 꼭 들어가야 했다는 설명이다.

20주년 특별프로젝트 기획은 지난해 시작됐다. 광주비엔날레 측은 일찌감치 자문위원회를 꾸려 윤 교수가 제출한 기획안을 채택했다. 홍 작가의 참여도 기획안에 이미 포함돼 있었다.

홍 작가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박 전 대통령을 닮은 아기를 출산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공개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윤 교수는 “폭넓은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부분적 표현에 대한 논란이 그림 전체의 주제를 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작가와 여러 차례 논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 작가의 전작을 보면 ‘세월 오월’의 노골적 묘사는 조금도 놀랍지 않다. 지금의 광주비엔날레 파행은 누구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던 결과다.

은근히 한 꺼풀 가려 품은 말이 곧이곧대로 펼쳐놓은 말보다 더 긴 울림을 남긴다. 통렬한 비판을 절묘한 은유로 담아낸 작품은, 스무 돌을 맞은 광주비엔날레에 기대하기 어려운 과제였던 걸까.

손택균 문화부 sohn@donga.com
#광주비엔날레#홍성담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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