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소개합니다” 작가들이 꾸민 이색 전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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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스펙트럼-스펙트럼’전

이동기 작가의 폭 8.4m, 높이 3.8m 아크릴화 ‘파워 세일’. 백화점 세일광고 인쇄물, 고 길창덕 화백의 만화 ‘신판 보물섬’ 중 한 컷, 영화 ‘아이, 로봇’의 캐릭터, 북한의 사상 선전물 등 이어 붙일 수 없을 듯한 이미지를 어색함 없이 뒤섞어 엮었다. 플라토 제공
이동기 작가의 폭 8.4m, 높이 3.8m 아크릴화 ‘파워 세일’. 백화점 세일광고 인쇄물, 고 길창덕 화백의 만화 ‘신판 보물섬’ 중 한 컷, 영화 ‘아이, 로봇’의 캐릭터, 북한의 사상 선전물 등 이어 붙일 수 없을 듯한 이미지를 어색함 없이 뒤섞어 엮었다. 플라토 제공
작품은 예술가가 만들지만 전시는 큐레이터가 만든다.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을 어떻게 보여줄까’ 결정하는 과정에서 큐레이터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24일부터 10월 12일까지 서울 중구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는 ‘스펙트럼-스펙트럼’전은 전시기획 지휘봉을 탐내온 작가들의 한바탕 살풀이다. 큐레이터가 아닌 작가들이 참여 작가와 전시작품 선정 등 기획 전반을 주도했다.

참여 작가는 14팀. 삼성미술관 ‘아트 스펙트럼’ 선정 작가 48팀 중 특히 활발하게 작업해온 7팀이 자유롭게 ‘내가 추천하고 싶은 작가’ 7팀을 각각 골랐다. 2001년부터 격년제로 실시하고 있는 ‘아트 스펙트럼’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진 작가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조나영 플라토 선임연구원은 “작가 추천 과정에는 아무 제약이 없었다. 잘 알고 지낸 선후배를 추천한 이도 있지만, 작품으로만 서로 존재를 아는 관계도 있다”고 말했다.

전시 작품은 회화, 영상물, 설치, 디자인인쇄물, 퍼포먼스 등 26점이다. 추천한 작가와 추천받은 작가를 나란히 이어놓지 않고 공간 흐름이나 기존 전시물과의 관계를 고려해 자유롭게 배치했다.

말굽과 말꼬리 장비를 쓰고 말처럼 움직이는 스스로를 촬영한 이형구 작가의 ‘Measure’. 플라토 제공
말굽과 말꼬리 장비를 쓰고 말처럼 움직이는 스스로를 촬영한 이형구 작가의 ‘Measure’. 플라토 제공
입구에 들어서면 옛 로댕갤러리의 흔적인 ‘칼레의 시민들’ 청동상 앞에 가로로 매달린 5.5m 길이 직육면체 ‘저편의 리듬’이 보인다. 청동 비슷한 색깔과 질감이지만 흑연 덩어리다. 정지현 씨(28)는 이 흑연둥치 사이사이에 30cm 간격으로 계량기 숫자판 12개를 삽입했다. 아파트 현관 밖 계량기만으로 이웃의 존재를 느끼는 현대의 삶에서 가져온 이미지에 대륙별 출생률과 사망률 데이터를 대입했다. 정 씨를 추천한 이형구 씨(45)의 작품 ‘Measure’는 이웃 전시실에서 상영된다. 5분 8초 분량 영상에서 이 씨는 직접 제작한 ‘말굽과 말꼬리’ 장비를 입고 켄타우로스족으로 변신한 듯 마장마술 시범을 보인다.

커밍아웃 작가 오인환 씨(50)의 ‘경비원과 나’는 미완성으로 끝난 설치작품이다. 오 씨는 플라토 경비원 한 명에게 퇴근 후 몇 차례의 개인적 만남을 제안해 최종적으로 그와 커플댄스를 추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려 했다. 그러나 함께 식사와 운동을 해나가던 중 경비원이 더이상의 참여를 거부했다. 3차례 만남에 대한 간략한 기록과 전시실에서 홀로 커플댄스를 추는 오 씨의 감시카메라 영상만 남았다. 후배작가 이미혜 씨(45)도 미술관 환경을 이용했다. 지하 기념품점에서 구매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청동 복제품을 녹여 못 수백 개를 만들고 작품 재료로 썼다.

‘눈에 보이는 것과 실체는 다르다’는 주제를 짚어 온 김범 씨(51)는 복잡한 미로를 빽빽하게 그린 ‘친숙한 고통’ 연작 13번째 마지막 작품인 높이 4.9m 폭 3.5m 아크릴화를 내놓았다. 전시를 통해 호감을 갖게 돼 그가 추천한 3인 연합팀 ‘길종상가’는 이태원 부근에서 가구와 잡화를 파는 30대 상인 겸 작가들이다.

‘아토마우스’ 캐릭터로 대중에게 친숙한 작가인 이동기 씨(47)는 생면부지의 이주리 씨(28)를 추천하며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뉴미디어를 쓰는 개념적 작업을 피하고 회화를 고집해 대학 시절 주변의 비판을 받았다”는 이주리 씨에게 이동기 씨는 “정형화된 ‘주류’는 협소한 시각의 허상일 뿐”이라고 답했다. 빛과 어둠을 대변하는 듯 대조적인 성향의 두 작가가 내놓은 그림 사이에 야릇한 연결점이 느껴진다. 월요일 휴관. 1000∼3000원. 1577-7595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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