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책 vs 책]‘뇌 사기극’ 이런 거 였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젠더, 만들어진 성/코델리아 파인 지음/이지윤 옮김/448쪽·2만3000원/휴먼사이언스
◇뇌를 훔치는 사람들/데이비드 루이스 지음/홍지수 옮김/368쪽·1만6000원/청림출판

영화 ‘트랜센던스’에서 주인공 뇌의 전기신호를 컴퓨터로 전송하는 장면. 두 책은 뇌 과학을 둘러싼 사회적 영향력을 ‘뉴로섹시즘’과 ‘뉴로마케팅’이란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영화 ‘트랜센던스’에서 주인공 뇌의 전기신호를 컴퓨터로 전송하는 장면. 두 책은 뇌 과학을 둘러싼 사회적 영향력을 ‘뉴로섹시즘’과 ‘뉴로마케팅’이란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초등학교 때 부모님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들은 기억은 없는지.

“○○야. 여자는 국어, 외국어를 잘한다는데 넌 왜 점수가 이 모양이니?”

“××야. 사내는 이성적이고 종합화 능력이 뛰어난데, 수학 점수가 55점이라니….”

‘남녀 간 뇌의 차이가 있다’는 전제하에 나온 말이다. 하지만 ‘젠더, 만들어진 성’은 남성과 여성의 뇌가 선천적으로 다르다는 뇌과학 이론에 강력한 반기를 든다.

신경과학자인 저자에 따르면 뇌과학자들이 발표한 기존 연구 결과는 100% 검증된 것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게슈바인트 이론. 임신 8주경 남성 태아는 여성에 비해 테스토스테론(호르몬의 일종)이 과다 분비되면서 뇌의 좌반구가 비좁아지고 우뇌가 발달한다. 이에 남성은 여성보다 수학적 능력이 뛰어난 우뇌 재능이 높아진다는 것.

하지만 후속 연구에서는 이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또 뇌 실험 연구 중 상당수는 인간이 아닌 쥐나 새에 호르몬을 주입한 후 행동 양상을 분석한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인간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포유류인 붉은털원숭이에게 적용한 결과에선 테스토스테론 주입에 따른 유아기 남녀 뇌의 차이가 없었다.

남녀 뇌 차이를 강조한 과학적 결과들이 과장된 이유에 대해 저자는 “남녀의 뇌가 다를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 후 결과를 도출한 탓”이라고 설명한다. 또 잘못된 연구 결과로 인해 남녀 뇌에 차이가 있다는 성차별인 ‘뉴로섹시즘(neurosexism)’이 사회에 팽배하게 됐다고 비판한다.

유아복의 경우를 보자. 남자아이는 파란색, 여자아이는 분홍색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각각의 옷을 선물한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전에는 분홍색은 ‘확고하고 강한 열의’를 나타내는 남성적 색인 반면 파란색은 ‘얌전하고 예민한 믿음의 상징’으로 통했다. 즉, 뇌 자체가 아니라 우리 주변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편견이 뇌의 남녀 차이를 만든 만큼 뉴로섹시즘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반면 ‘뇌를 훔치는 사람들’은 ‘뉴로마케팅(Neuromarketing)’의 속살을 폭로한다. 뇌신경학자인 저자는 기업이 소비자의 뇌 속에 숨은 욕망을 어떻게 읽어내고 이윤과 연결시키는지를 다양한 사례로 보여준다.

요즘은 TV 광고 시청 후 30초 만에 소비자의 뇌파가 변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광고를 제작한다. 실제로 실험자에게 광고를 보여주기도 한다. 광고에 관심을 보일 땐 뇌의 베타파가 활성화되고,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알파파가 감소했다. 긴장 이완 상태를 보여주는 ‘세타파’, 기억을 강화하는 ‘감마파’도 활용된다. 자기공명영상(MRI)을 이용한 마케팅도 있다. 콜라 회사들은 실험 대상자를 아예 뇌 스캐너에 넣고 블라인드 테이스트 테스트를 한다.

요즘 선호되는 ‘뉴로마케팅’은 ‘모든 걸 쉽게 하라’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에너지 효율을 중시한다. 상품을 판단하고 구매하는 데도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려고 하기 때문에 익숙한 브랜드를 선호하거나 처음 접해도 이해가 잘되는 상품을 고르게 된다는 논리다.

기업들이 첨단 뇌과학을 활용하는 사례를 접하다 보면 내 심리가 낱낱이 꿰뚫리고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 주체적, 합리적 소비가 가능하긴 한가? 이 때문에 소비자가 뉴로마케팅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지식이야말로 소비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수단이라는 것이다. 다만 뇌 속 1000억 개의 뉴런과 1만 개 이상의 연결 구조를 파악해 뇌의 역할과 기능을 밝히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보이니 너무 걱정하진 말자.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젠더#만들어진 성#뇌를 훔치는 사람들#뉴로마케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