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혼자만 깨우치면 뭣 하겠는가’ 펴낸 진오 스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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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 대신 운동화 선택한 ‘철인 스님’
“산속 염불만으로는 중생 구제 못해”

진오 스님이 지난해 국내에서 마라톤 훈련을 하는 모습. 그는 마라톤을 통해 ‘km당 100원’의 후원금을 모아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있다. 리더스북 제공
진오 스님이 지난해 국내에서 마라톤 훈련을 하는 모습. 그는 마라톤을 통해 ‘km당 100원’의 후원금을 모아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있다. 리더스북 제공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법당 대신 길을, 목탁 대신 운동화를 선택하셨나요?”

“‘돈’ 때문입니다.”

속세를 떠난 스님이 돈을 운운하다니…. 오해하지 말란다. 이주노동자 등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후원금이라고 했다. 경북 구미 대둔사 주지인 진오 스님(51)은 2011년 4월부터 3년간 혼자서 수천 km를 달렸다. 마라톤 과정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하고 ‘km당 100원’의 후원금을 모아 이주노동자를 지원해 왔다. 그 과정을 엮은 ‘혼자만 깨우치면 뭣 하겠는가’란 책을 최근 냈다.

“2010년 7월이었죠. 스물여섯 살 베트남 청년을 만났는데 머리의 3분의 1이 훼손됐더군요. 오토바이를 타다 불법U턴한 자동차에 치였죠. 합의금으로 700만 원을 받았어요. 한국 사람이 교통사고로 뇌를 잘라내는 수술까지 했으면 700만 원으로 합의했겠습니까? 복원 수술을 위해 108km 후원금 마련 마라톤을 뛰었습니다.”

그는 현재까지 국내에서 3500km, 베트남 독일 일본 등 해외에서 총 2200km를 달렸고 그 후원금으로 이주노동자, 폭력피해 다문화여성을 지원했다. ‘철인스님’이란 별명도 얻었다.

“다문화가족 쉼터 후원금을 위해 강화도에서 강릉까지 308km를 65시간 동안 뛸 때였어요. 전봇대가 다가오더군요. 지쳐서 어지럼증이 생긴 거죠. 다리가 안 움직여 허벅지를 꼬집다 보니 눈물이 났어요.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사람들의 만류를 못 이기는 척 따를걸…. ‘달리지 않으면 이주노동자가 도움을 못 받는다’란 생각으로 참았어요.”

진오 스님은 1990년대부터 사찰이 아닌 구미 시내 금오종합사회복지관에서 거주하며 봉사활동을 해왔다.

“어려운 사람이 있는 곳이 부처가 있는 곳입니다. 산속에서 염불을 외워서는 중생을 구제할 수 없어요. 1987년 공군 군법사로 활동할 때였죠. 당시 스물여섯인 저는 제 잘난 맛에 살았어요. 그러다 교통사고로 왼쪽 눈을 실명하게 됐죠. 자살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군 병원에서 양 다리가 절단된 사람을 만나면서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보게 되는 마음의 눈을 얻었습니다.”

진오 스님은 지금도 은행으로부터 이자 독촉 전화를 받는단다. 2005년 이주노동자 쉼터, 2008년 가정폭력 이주여성 쉼터를 세우느라 2억 원의 빚을 진 것. 그는 “상황이 힘들어도 이주노동자들의 고마움이 담긴 눈빛을 보면 다시 힘이 난다”고 말했다.

진오 스님은 최근에도 108km를 달렸다. 세월호 침몰 때문이다. 그는 “미안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도 베트남 내 108개의 해우소 설치를 위해 1700km를 뛸 계획이다.

“석가모니께서 6년 동안 갖가지 고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그런 고행의 무익함을 역설했잖아요. 저 역시 남을 위해 뛴다는 생각으로 몸을 혹사했는데 이 역시 집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수백 km를 뛰기보다는 다른 분들과 함께 릴레이로 뛸 생각도 해요. 함께 달리며 화합과 소통을 보여주고 싶어요.”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진오 스님#후원금#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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